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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의 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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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문화의 겉과 속

모든 문화에는 심리적 상흔과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강준만 지음 | 분야: 정치, 사회, 문화 | 신국판(153x225mm) | 1도 인쇄 | 양장 | 880쪽 | 2012년 9월 10일 발행 | 32,000원 | ISBN: 978-89-5906-220-1 03300


두툼한 계약서를 준비하는 미국인, 공손한 꾸물대기로 질질 끄는 영국인, 눈치가 살아 있는 프랑스인, 시시콜콜 따지는 독일인, 융통성이 너무 많은 이탈리아인, 계약을 과정쯤으로 여기는 그리스인, 말 한마디로 끝내는 아랍인, 표리부동한 일본인 그리고 빠르고 화끈한 한국인?

《세계 문화의 겉과 속》은 오랫동안 세계 문화와 커뮤니케이션, 한국학에 천착해온 강준만이 내놓는 ‘세계 문화 총정리’다. 세계 문화와 한국 문화를 종횡으로 엮어 그 속에 숨어 있는 심리적 상흔과 이데올로기의 뿌리를 추적하면서 명(明)과 암(暗)을 평가한다.

강준만은 대한민국이라는 국적성을 전제로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그는 특히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intercultural communication)’에 주목한다.


늘 바깥만 쳐다봐야 하는 건 한국인의 숙명인가

강준만은 “한국인은 자국의 역사와 경험에서 무언가 배우려 하지 않으며 한국만의 특수성에 주목하지도 않는다”라는 말로 운을 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인은 늘 밖만 쳐다본다. 미국으로 갔다가 프랑스로 달려가고 네덜란드로 갔다가 스웨덴을 거쳐 핀란드도 기웃거린다. 웬 모델을 그리도 많이 수입하는지 어지러울 정도다. 한국과 수준이 비슷한 나라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자기보다 좀 못하다 싶으면, 대놓고 얕잡아 본다. _4~5쪽

대한민국의 무역의존도가 113퍼센트라는 특수성은 왜 한국인이 바깥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러나 자기 문화를 모른 채 세계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까? 세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즉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문화를 잘 알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한국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선 밖을 바라보고 살 수밖에 없으며 또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켜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한국에 대한 공부도 병행하면서 비교 연구적 관점에서 밖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발전 모델과 관련해 무턱대고 미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웨덴, 핀란드 등을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한국과 그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 철저히 공부하면서 밖을 바라봐야 한다는 말이다. 그 점을 전제로 해야만, 한국인의 해외 지향성은 미덕이요, 당위다. _6쪽

강준만은 한국을 세계와 비교하면서 한국 문화의 명암(明暗)을 보여주기도 하고 그 명암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살펴본다. 대표적인 게 바로 ‘빨리빨리’다.

한국 경제의 압축 혁명 연구서를 펴낸 도미니카공화국 주한 대사 엑토르 갈반(Hector Galvan)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인들은 우리 도미니카인들에게 ‘희망의 얼굴’입니다. 이곳에서 근무하면서 한국의 급속한 발전 과정을 연구한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중략) 한국인들의 ‘빨리빨리’ 정신이 한국을 짧은 기간에 이처럼 발전시켰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_147쪽

국제적 망신에 ‘병’으로까지 취급되던 ‘빨리빨리’가 이제는 국제적으로 찬양되는 이 얄궂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특한 장례 문화는 한류의 원동력으로 꼽히고 있다(제5장 중 <장례식의 통곡 문화가 한류의 원동력인가>). 초고속 성장, 압축 성장은 한국 사회에 극단주의를 심화시켰다지만 그럼에도 한국 사회가 중용 지향적이라는 설명도 있다. 우리는 그 특성을 한국의 독특한 종교 문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제7장 중 <왜 한국은 세계 최고의 다종교 국가가 됐나>).

이와 함께 강준만은 뒤집어 보기도 제안한다. 반도기질은 식민사관인지(제4장 중 <섬나라 근성과 반도기질은 허구인가>), 왜 한국에서는 호칭 문제로 살인 사건도 일어나는지(제6장 중 <왜 한국인은 호칭에 목숨을 거는가>), 사대주의는 다시 볼 여지가 없는지(제10장 중 <사대주의는 나쁘기만 한 건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키치’와 ‘캠프’가 공존하는지(제14장 중 <왜 한국은 ‘키치의 제국’인가>) 되묻는다.


비슷하지만 다르고 다르지만 비슷하기에 더욱 알쏭달쏭한 세계 문화

서로 다른 정치적∙경제적∙사회적∙역사적 배경은 어떤 문화를 낳았을까? 그 문화에 숨어 있는 콤플렉스와 독특함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한국인이 바깥만 바라보는 건 콤플렉스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콤플렉스는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모든 나라에 다 있다.

한국인은 자국의 역사에 대해 자꾸 콤플렉스를 말하지만, 이 지구에 콤플렉스 없는 나라는 없다.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미국은 역사가 짧은 데서 오는 역사 콤플렉스, 캐나다는 별다른 차별성도 없이 미국의 부속 국가 비슷하게 돼가는 데에서 오는 정체성 콤플렉스, 덴마크는 국가 크기가 작은 데서 오는 규모 콤플렉스, 이스라엘은 늘 적에 둘러싸여 있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포위 콤플렉스가 있다. _159쪽

미국이 ‘젊음’을 숭상하고 유럽 나라들과 티격태격하는 것도 역사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고(제3장 중 <한국∙미국∙중국의 역사 콤플렉스는 어떻게 다른가>) 캐나다에서는 아예 미국과 통합하자는 말까지 나온다(제9장 중 <과연 ‘캐나다적인 것은 존재하는가>). 영국은 ‘신사의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그만큼 영국인들이 위선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제14장 <왜 영국인은 섹스 눈요기를 좋아하나>).

게다가 같은 유럽 문화권에 속해서 비슷해 보이는 영국과 독일, 프랑스 또한 ‘엇비슷할’ 뿐이다. 네덜란드의 사회심리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Geert Hofstede)는 조직 문화를 피라미드형, 기계형, 시장형, 가족형으로 분류해 각 나라의 문화와 연결하는 시도를 했는데, 영국은 시장형 조직 문화, 독일은 기계형 조직 문화, 프랑스는 피라미드형 조직 문화라고 한다(제6장 <영국∙독일∙프랑스의 조직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눈치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고맥락/저맥락(high context/low context)’ 개념으로 한국인의 눈치뿐만 아니라 독일과 프랑스 ‘눈치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한다.

프랑스 기업에 채용된 한 독일인은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왜 미리 지적해주지 않았는가?”라는 반응을 보인 반면, 독일 회사에 근무하는 한 프랑스인은 스스로 사직서를 내면서 “상급자가 시시콜콜 간섭이 많아 싫다.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 늘 잔소리를 들어야 하니 괴롭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_25쪽

독일 사회는 대표적인 저맥락 사회로,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좋아한다. 독일인들은 대화할 때도 상대방 눈을 똑바로 보는데, 미국인들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라고 한다. 시선 처리나 ‘시선의 길이(moral looking time)’ 또한 나라마다 다르다. 한국인도 시선의 길이가 긴 편이기는 하지만, 그건 남 일에 관심이 많은 습성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시선 때문에 싸움이 많이 벌어진다 점이다(제5장 <왜 공항에서 두리번거리는 사람은 거의 한국인인가>).

이번에는 시간관념에 관해 살펴보자.

1985년 6월 미국 국적 TWA(Trans World Airlines) 여객기가 아테네에서 시아파(Shiah)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돼 레바논 베이루트 공항에 강제 착륙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은 이 비행기에 탑승한 미국인 39명을 인질로 잡고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시아파 레바논인 764명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인질을 넘겨받은 시아파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틀 뒤에 인질을 납치범들에게 돌려보내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협상 대표들은 48시간이라는 시한에 쫓겨 피가 마르는 듯한 위기의식을 느꼈지만, 나중에 시아파 지도자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듣고는 허탈감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정확하게 48시간을 시한으로 정한 건 아니다. 그 말은 며칠이란 의미였다.” 결국 인질은 2주 뒤에 풀려났다. 이 사건은 시간관념에 대한 문화적 차이를 설명할 때 중요한 사례로 꼽힌다. _123쪽


한때 ‘코리안 타임’이라는 게 있었다. 시간관념이 없는 한국인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지만, 시간관념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한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반면에 서양인은 시간관념이 철저하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같은 유럽인이라고 해도 독일인은 시간관념이 철저하다. 그러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로 넘어가면 사정이 다르다. 융통성이 너무 많아서 이런 나라 사람들을 상대하려면 특별한 인내심이 필요할 지경이다.

미국 기업인이 스페인 기업인을 상대할 때 늘 듣는 조언이 있다. 기다릴 줄 알고 인내심을 키우라는 것이다. 점심시간만 두세 시간이 걸린다. 바쁠 땐 점심을 곧잘 햄버거로 때우곤 하는 미국 기업인이 본론은 꺼내지도 못한 채 두세 시간 동안 그렇게 점심이나 같이 먹고 있노라면 속이 터질 만하겠다. _22쪽

이 밖에도 왜 제네바와 취리히에 (인구당)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지(제4장 중 <왜 스위스에 정신분석학자와 심리학자가 가장 많은가>),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가 미국인들의 잦은 이동성 때문인지(제4장 중 <미국과 한국의 거주 이동성은 어떻게 다른가>), 왜 일본에만 섬나라 근성이라는 게 존재하는지(제4장 중 <섬나라 근성과 반도기질은 허구인가>), 그 넓은 호주는 왜 아시아에서 섬나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싸여 있는지(제9장 중 <왜 호주는 문화적 고아가 됐나>), 현재 ‘네그리튀드(negritude)’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제10장 중 <아프리카인은 분석적이기보다 본능적인가>)를 살펴보다보면 마치 강준만과 함께 전 세계를 공부하며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문화 상대주의를 넘어서

물론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연구에도 한계는 있다. 어느 나라의 국민성은 어떻다는 일반화에 빠질 위험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연세대 교수 조한혜정의 말처럼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문화의 차이를 강조하다보면, 즉 문화 상대주의를 강조하다보면, 실제 존재하는 남녀 문화의 차이라든가 계급 문화의 차이라든가 세대 문화의 차이가 무화된다. 그러나 국민성 탐구의 위험에만 주목하면, 문화 간 커뮤니케이션 연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딜레마다.

강준만은 이를 피하기 위해 문화를 불변하는 고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을 것과 문화의 정치경제적 토대나 배경을 반드시 살펴볼 것을 제안한다. 여기에 각 국가의 사회적 동질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살펴봐야 한다고 충고한다. 여기에 개인과 집단을 구분하려는 노력 또한 빠뜨릴 수 없다.

강준만은 이 밖에도 세 가지 기본 원칙으로 제시하는데, 그것은 ‘내부 평가’, ‘심사숙고’, ‘성찰성’이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첫째, 프랑스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가 제시한 ‘내부 평가’다. 다른 나라의 문화에 대해 남들이 이러쿵저러쿵하긴 힘들지만, 내부적으론 평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둘째, 네덜란드의 조직인류학자 헤이르트 호프스테더가 제시한 ‘심사숙고’다. 판단을 내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자는 신중론이다.
(중략)
셋째,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가 제시한 ‘성찰성’이다. 그는 역사적 상대주의가 역사가의 주관적 요소의 불가피성을 강하게 주장해 가치 혼돈 상태와 회의주의를 낳는다는 비판에 맞서 역사적 상대주의의 실용적 가치를 옹호한 것이었지만, 이는 문화 상대주의에도 적용될 수 있다. _302~303쪽


강준만은 ‘내부 평가’, ‘심사숙고’, ‘성찰성’을 관통하는 공통점으로 ‘확신에 대한 자제’와 그에 따른 ‘표현의 신중함’을 덧붙이며 딜레마는 딜레마답게 다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 아니면 저것 식인 디지털 사고는 딜레마를 다루는 데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불분명한 게 불만스럽더라도 모든 걸 연속선상에서 다루려는 아날로그 사고를 수용하는 포용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한다.

문화적 상대주의는 보편적 가치나 진리 추구 욕망이 강한 사람에게는 불만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남용을 경계하며 특수 상황에서의 과도기적 용법에 긍정하는 정도로 중용의 미덕을 발휘하자는 강준만의 충고는 귀 기울일 만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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