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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화유산답사기 1 - 조선왕릉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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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이종호 | 쪽수 372쪽 | 판형 170x225 | 값 19,000원 | 분야 역사 > 문화 / 역사기행
출간일 2014년 5월 16일 | ISBN 978-89-91945-64-7 04910 | 978-89-91945-66-1(세트)
키워드 조선, 왕릉,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과학문화유산, 동구릉, 건원릉, 현릉, 목릉, 숭릉, 원릉, 휘릉, 혜릉, 경릉, 수릉, 홍유릉, 홍릉, 유릉, 사릉, 광릉, 서오릉, 명릉, 경릉, 창릉, 익릉, 서삼릉, 예릉, 희릉, 효릉, 공순영릉, 파주 삼릉, 순릉, 공릉, 영릉, 온릉, 파주 장릉, 김포 장릉, 태강릉, 태릉, 강릉, 의릉, 헌인릉, 헌릉, 인릉, 선정릉, 선릉, 정릉, 영녕릉, 영릉, 장릉, 융건릉, 융릉, 건릉, 태조, 문종, 현덕왕후, 선조, 의인왕후, 인목왕후, 현종, 명성왕후, 영조, 정순왕후, 장렬왕후, 단의왕후, 헌종, 효헌왕후, 효정왕후, 문조, 신정왕후, 고종, 명성황후, 순종, 순명효왕후, 순정효왕후, 정순왕후, 세조, 정의왕후, 숙종, 인현왕후, 인원왕후, 덕종, 소혜왕후, 예종, 안순왕후, 인경왕후, 정성왕후, 철종, 철인왕후, 장경왕후, 인종, 인성왕후, 공혜왕후, 장순왕후, 진종, 효순왕후, 단경왕후, 인조, 인열왕후, 원종, 인헌왕후, 문정왕후, 명종, 인순왕후, 경종, 선의왕후, 태종, 원경왕후, 순조, 순원왕후, 성종, 정현왕후, 중종, 신덕왕후, 세종, 소헌왕후, 효종, 인선왕후, 단종, 장조, 현경왕후, 정조, 효의왕후


▣ 출판사 서평


우리 과학문화유산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다


과학은 선조들의 믿음이자 희망이었다

우리는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할 때마다 이제껏 알지 못했던 문화유산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감명을 받곤 한다. 각각의 문화유산에는 그 지역과 민족 특유의 역사와 문화, 과학까지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세계를 압도할 만한 과학의 결정체인 문화유산이 많다. 하지만 우리 유산의 과학성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역사 속에 묻혀 있기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선조가 남긴 유산을 대할 때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다. 앞선 문명을 느낄 수 있는 문화유산이 발견되면 당연히 타국(주로 중국)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객관적인 눈으로 비추어보면 우리의 문화유산이 모두 외부에서 전수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문화유산에서 과학성은 무엇보다 인간과 관련되어 논의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희로애락을 느끼며, 이는 인간이 지닌 특권이다. 이 특권을 보다 값지게 만들거나 문제점을 해결해주는 것이 과학이다.
우리 선조들은 과학이라는 단어를 쓰기 이전부터 과학을 생활화하고 있었다. 장승, 솟대 등 많은 민속 문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들에 우리 선조들의 부단한 믿음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선조들은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에서 심신의 치유와 공동체 의식의 강화 등 기대에 상응하는 보답을 유·무형적으로 받은 것이다.
인간의 삶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는 문화유산은 이처럼 과학적인 속성을 지닌다. 이를 통해 우리만의 지혜와 깨달음이 담긴 과학문화유산이 많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저자는 그러한 ‘우리 과학문화유산’으로 조선 왕릉과 전통 마을을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하나하나 밟아나간다.


조선 왕릉은
역사가 남긴 신비로운 공간이자
과학이 담긴 지혜로운 공간이다


세계가 먼저 알아본 조선 왕릉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이 거의 훼손 없이 남아 있는 예는 세계적으로 조선 왕릉이 유일하다. 조선 왕릉은 무려 42기나 된다. 태조 이래 왕위를 공식적으로 이어받은 사람은 27명에 불과하지만, 왕후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했어도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도 왕릉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42기의 왕릉 중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과 후릉을 제외한 40기를 2008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했고, 단 1년 만에 유네스코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했다. 2009년 6월 동구릉, 광릉, 태릉 등 왕릉 40기가 일괄적으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조선 왕릉이 얼마나 세계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지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산재한 40개 능을 답사의 편의성을 고려해 4구역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있으며, 동일 구역 내에 있는 추존 및 왕비, 계비의 왕릉까지 함께 다루고 있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40기의 조선 왕릉을 찬찬히 거닐어보자. 왕릉이 형성된 배경뿐 아니라 왕릉을 조성한 선조들의 과학적 배려까지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왕릉의 체계적인 공간 구성

조선 왕릉의 공간은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정자각을 중심으로 크게 2개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금천교, 재실, 연지 등 진입 공간을 지나 홍살문, 정자각과 참배도(향도, 어도), 수복방, 수라청이 배치된 곳은 왕의 혼백과 참배자가 만나는 제향 공간이며, 두 번째로 언덕 위 봉분을 중심으로 곡장과 석물이 조성된 곳은 죽은 자를 위한 성역인 능침 공간이다.
왕릉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돌다리인 금천교다. 이는 왕의 혼령이 머무는 신성한 영역으로 현세와 속세를 구분해준다. 금천교를 지나면 능원이 신성한 구역임을 표시하는 커다란 문이 있다. 붉은 석간주 칠을 한 신문神門인 홍살문은 둥근 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 지붕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운 형태로, 중앙에는 삼 태극무늬가 있다.
홍살문 앞에서 정면의 정자각까지 얇은 돌을 깔아 만든 긴 돌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참도라고 한다. 참도는 혼령이 이용하는 신도(향도)와 참배자(왕 또는 제관)가 이용하는 어도로 구분된다. 좌측의 신도가 능의 주인인 신이 다니는 길로 우측의 어도보다 약 10센티미터 정도 높고 넓다.
정자각 앞쪽 양옆에는 재실에서 준비한 제례 음식을 진설하는 수라청과, 능원을 지키는 사람의 공간인 수복방이 있다. 수라청 근처에는 제례 준비를 위한 어정이 있다. 정자각 좌측(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우측)에는 비갈 또는 신도비를 세우는데 개석(뚜껑돌) 양쪽에 쌍룡을 새긴다.
사초지 위에 오르면 장대석이라 부르는 긴 돌이 단을 지어 놓여 있고, 가장 높은 상계에 능의 주인이 영면한 봉분이 자리한다. 능의 높이는 약 3~4.5미터, 광중 깊이는 약 3미터, 너비는 약 9미터, 길이는 약 8미터이고 지름은 약 6~9미터이며 능상 모양은 반구형半球形이다. 지석誌石은 사대석 남쪽에서 석상 북쪽 사이에 파서 삼물三物(모래, 황토, 생석회)을 사방과 윗면에 굳게 다져 쌓은 다음 흙으로 메워 묻는다.
봉분 주변 3면에는 곡장이라는 낮은 돌담이 조성되어 있다. 궁궐에서 담장을 치는 것과 같다. 곡장 안에서 석호와 석양이 봉분을 호위하고, 능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봉분을 병풍석이 둘러싸고, 병풍석 외
곽을 난간석이 둘러싼다. 난간석 앞 석양石羊 2좌와 석양 사이에 석호石虎를 동서쪽에 각각 1좌와 북쪽에 2좌씩 담장을 향해 배치한다. 장대석 위 제1단 능상 정면에는 장방형의 석상을 두고 좌우에 망주석을 세운다. 중계단 장대석 위 제 2단 정면 중앙에는 장명등을 세웠다. 장명등 좌우에는 관복을 입은 문인석 1쌍 또는 2쌍을 대립하게 하고, 문인석의 뒤나 옆에는 각각 석마 1좌를 세우며, 하계단인 제3단 좌우 문인석 앞에는 무인석 1쌍 또는 2쌍과 석마를 각각 1좌씩 세운다. 석상의 좌우에 각각 1좌씩 설치하는 망주석은 상단에 둥근 머리를 만들고 운두雲頭(구름 머리)를 새기며, 아래에는 염의簾衣(구슬발)를 새긴다.


▣ 본문 중에서

조선 왕릉 40기는 선릉과 정릉을 제외하고 한 번도 도굴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조선 왕릉이 도굴을 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과학적인 건축 기술에 있다.
왕릉 석실의 벽과 천장은 두께가 76센티미터나 되는 화강암을 통째로 사용했다. 석재의 끝은 비스듬히 파서 이음매 부위를 서로 끼워 맞췄다. 거기다가 工자 형태의 철제 고리로 두 석재를 고정해 석실 전체를 하나로 엮었다. 입구에는 61센티미터 두께의 돌을 두 겹으로 세워 외부의 접근을 막았다.
석실 주변에는 시멘트와 비슷한 삼물을 1.2미터 두께로 둘러쌌다. 삼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단하게 굳을 뿐 아니라, 느릅나무 껍질에 있는 코르크층이 물과 공기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이뿐 아니다. 삼물 바깥에는 숯가루를 15센티미터 두께로 감싸 나무뿌리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마지막으로 주변을 1.2미터 두께의 잡석으로 다져 봉분을 쌓아 올렸다.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견고한 방지책도 도입했다. 세종의 영릉은 석실 부재들의 이음매를 대형 철제 고리로 고정했고, 입구에는 이중 돌 빗장을 채웠다. 또한 석실 사방은 석회 모래자갈 반죽을 두껍게 채웠다.
- 「조선 왕릉, 도굴과의 전쟁」 중에서


세종대왕의 영릉은 이장하면서 예종 때 선포된 『국조오례의』에 따라 병풍석과 석실 제도를 폐지하고, 회격으로 하는 조선 전기 능제의 기본을 이루었다. 합장릉인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둘렀으며 난간석을 받치고 있는 동자석주에는 한자로 십이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했다. 병풍석 없이 2개의 혼유석과 장명등, 좌우에 망주석을 놓았는데 혼유석의 고석은 선대의 5개에서 4개로 줄었다. 또한 2개의 격실 사이에 48센티미터의 창문(창혈)을 뚫어 왕과 왕비의 혼령이 통하게 해 합장릉의 의도를 더욱 명확하게 했다.
봉분 능침 주변의 석양과 석호는 서로 엇바꾸었고 좌우로 각각 2쌍씩 8마리를 밖을 향해 능을 수호하는 형상으로 배치했다. 봉분의 동, 서, 북 세 방향에는 곡장을 둘렀다. 봉분 앞 중계에는 문인석 1쌍, 하계에는 무인석 1쌍을 세우고 문 · 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를 배치했다.
세종은 한국의 장례 방식에도 획기적으로 기여했는데, 예조의 다음과 같은 건의에 따른 것이었다. “그동안 운구를 유거로 한 것은 중국의 풍습으로,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아 불편하니 어깨에 메는 상여가 좋다.” 이후 일반인의 상여도 수레가 아니라 사람들이 메고 운반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상여는 매우 과학적인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폭이 1미터도 안 되는 좁은 논두렁을 지나갈 때 양쪽에 있는 상여꾼들은 각각 발을 좁은 길의 벽에 붙이면서 한 발 한 발 전진하며 지나간다. 경사진 산비탈도 이런 형태로 나아갈 수 있다. 아무리 좁은 길도 지나갈 수 있는 것은 역삼각형 피라미드의 형태를 취해 힘을 분산시키면서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자랑하는 지게의 원리와 다름없다.
- 「영릉」 중에서


▣ 차례


들어가는 말 · 5


제1구역


一步. 동구릉


건원릉 | 태조 이성계 · 24
북한에서 가져온 흙과 억새풀


현릉 | 문종과 현덕왕후 · 38
소나무 사이로 마주보는 왕과 왕비


목릉 | 선조와 의인왕후 · 인목왕후 · 47
뻗고, 꺾이고, 층진 길


숭릉 | 현종과 명성왕후 · 54
17세기 정자각은 어떻게 생겼을까


원릉 | 영조와 정순왕후 · 61
호랑이인가, 도마뱀인가, 다람쥐인가
<왕과 왕비의 나이 차가 51세?> · 69


휘릉 | 장렬왕후 · 73
잡상과 ‘어처구니없다’의 관계는?


혜릉 | 단의왕후 · 78
웃고 있는 무인석, 못마땅한 문인석


경릉 | 헌종과 효현왕후 · 효정왕후 · 82
세 개의 능을 지키는 태극 전사


수릉 | 문조와 신정왕후 · 87
왼쪽 세호는 내려가고, 오른쪽 세호는 올라간다


二步. 홍유릉
홍릉 | 고종과 명성황후 · 94
나는 황제로소이다


유릉 | 순종과 순명효왕후 · 순정효왕후 · 118
흉지와 구설수를 넘어서


三步. 사릉


사릉 | 정순왕후 · 108
죽어서도 단종을 보고 싶다


四步. 광릉


광릉 | 세조와 정희왕후 · 118
5,170종의 생물이 사는 곳


제2구역


一步. 서오릉


명릉 | 숙종과 인현왕후 · 인원왕후 · 136
장희빈의 묘는 어떤 모습일까


경릉 | 덕종과 소혜왕후 · 144
여인 천하, 인수대비 천하


창릉 | 예종과 안순왕후 · 152
청룡이 높고 백호가 낮은 땅


익릉 | 인경왕후 · 159
균형감과 정교함을 갖춘 꽃무늬


홍릉 | 정성왕후 · 164
텅 빈 왕의 유택


二步. 서삼릉


예릉 | 철종과 철인왕후 · 170
왕릉의 석물도 재사용한다?


희릉 | 장경왕후 · 176
단명한 왕후, 웅장한 왕릉


효릉 | 인종과 인성왕후 · 180
조선 왕실의 묘가 모였다
<동물 머리에 사람의 몸, 십이지 신상> · 188


三步. 공순영릉


순릉 | 공혜왕후 · 192
성종의 예술 감각을 엿보다


공릉 | 장순왕후 · 195
정자각이 하늘에 떠 있다?


영릉 | 진종과 효순왕후 · 198
최고의 명필, 정조의 능표석


四步. 온릉


온릉 | 단경왕후 · 203
잊혀진 여인의 쓸쓸한 묘
<왕의 모습을 기리다, 제향 기신제> · 209


五步. 파주 장릉
파주 장릉 | 인조와 인열왕후 · 213
17세기와 18세기가 공존한다


六步. 김포 장릉


김포 장릉 | 원종과 인헌왕후 · 222
뽕나무에 깃든 부모의 영혼


제3구역


一步. 태강릉


태릉 | 문정왕후 · 232
조선의 측천무후가 잠든 곳


강릉 | 명종과 인순왕후 · 238
비공개에서 공개로, 모습을 드러내다


二步. 의릉


의릉 | 경종과 선의왕후 · 247
홍살문 앞에 명당수가 흐른다


三步. 헌인릉


헌릉 | 태종과 원경왕후 · 256
세종의 효심이 깃든 곳


인릉 | 순조와 순원왕후 · 264
석양과 석마, 석인이 살아 있다
<조선 왕조 묘호의 비밀> · 272


四步. 선정릉


선릉 | 성종과 정현왕후 · 280
왜 화재와 도굴이 끊이지 않을까


정릉 | 중종 · 285
석상의 코를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
<조선 왕릉, 도굴과의 전쟁> · 297


五步. 정릉


정릉 | 신덕왕후 · 301
ㄱ자로 꺾인 참도, 입구부터 다르다


제4구역


一步. 영녕릉


영릉 | 세종과 소헌왕후 · 312
최고의 왕, 천하의 명당
<연이 떨어지는 자리, 연주리> · 318


영릉 | 효종과 인선왕후 · 324
15년 내내 수리해야 했던 왕릉


二步. 장릉


장릉 | 단종 · 334
비운의 왕, 오지에서 눈을 감다


三步. 융건릉


융릉 | 장조와 현경왕후 · 344
아름다움이 사도세자를 위로할지니


건릉 | 정조와 효의왕후 · 356
여의주를 문 용을 만나다

주 · 364


▣ 지은이 소개 _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프랑스 교육부가 주최한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 『천재를 이긴 천재들』, 『과학 삼국유사』, 『과학 삼국사기』,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황금보검의 비밀』, 『미스터리와 진실』(전 3권)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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