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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드라마다
주제가 있는 미국사 2


지은이 강준만 | 쪽수 336쪽 | 판형 152×225(신국판, 무선)
값 16,000원 | 분야 인문역사 > 미국사
ISBN 978-89-5906-264-5 03900 | 출간일 2014년 8월 11일


키워드 : 미국, 드라마, 아메리칸 드림, 포카혼타스, 마녀사냥, 프로테스탄트, 독립혁명, 미영전쟁, 미국의 민주주의, 전신 혁명, 미국-멕시코 전쟁, 데카당스시대, 조미수호조약, 유한계급, 과학적 관리법, 킨제이 보고서, 마피아



▣ 출판사 서평



“인간은 꿈 없이 살 수 없다!”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


미국을 무한한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아메리칸 드림’의 역사는 400년이 넘었다.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이 있는 미국 역사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세계 모든 나라 가운데 역사의 드라마틱한 흥미성이 가장 뛰어난 나라가 미국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이 ‘초초강대국’으로 불릴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것도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초고속 ‘압축성장’으로 말이다. 대니얼 부어스틴은 “신생국 미국은 유럽이 2,000년 동안 경험했던 것을 한두 세기로 역사를 압축시켜 놓았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의 절대다수가 결코 이룰 수 없는 ‘사기’라는 게 충분히 밝혀졌지만, 미국인들은 여전히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은 건국 이전부터 주로 성공의 열망에 들뜬 사람들이 몰려든 곳이다. 세상을 관조하고 성찰하는 철학은 낡아빠진 유럽이나 하라는 게 미국인들의 태도였다. ‘아메리칸 드림’은 이미 ‘아메리칸 백일몽’이라는 다른 이름을 얻었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은 더욱더 질긴 생명력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꿈 없이 살 순 없으며, 현실이 고달플수록 꿈에 매달려야만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꿈은 어디로 갔나?


1607년 4월 24일 오늘날의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근처의 체사피크만에 남자 144명을 태운 배 3척이 도착했다. 이들은 제임스 강 하구에 첫 번째 식민지인 제임스타운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13년 후인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매사추세츠만의 플리머스에 정착촌을 건설했다. 미국인들에게 플리머스는 ‘추수감사절’을 연상시키지만, 제임스타운은 ‘식인’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제임스타운은 미국과 영국 모두에게 지우고 싶은 역사였고, 그런 이유로 포카혼타스 신화는 탄생했는지 모른다.
1620년 11월 11일 남자 41명이 메이플라워호에서 짤막한 자치 정부 선언문에 서명했다. 이것이 북아메리카 최초의 성문헌법으로 간주되는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플리머스라는 항구도시에 정착한 이들은 첫해 겨울에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반이 죽었다. 다음해에는 인디언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었는데, 인디언들은 이들에게 물고기를 잡고 옥수수를 기르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10월 첫 번째 추수 후 감사절 파티를 열고 이날을 ‘감사의 날’로 선포했다. 이게 바로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다. 하지만, 추수감사절은 인디언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이주민들은 인디언들의 무덤을 파헤지고, 옥수수와 밀과 콩 낱알을 훔치고, 인디언들을 총으로 쏴서 죽였다. 추수감사절이 추수강탈절이 된 것이다. 이들이 이주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며 겨울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명백한 실수였다”. 이주민들은 원주민을 배반하고 땅을 빼앗았던 것이다.
1682년 윌리엄 펜은 펜실베이니아로 건너왔다. 영국 찰스 2세가 그에게 뉴욕과 메릴랜드 사이의 넓은 땅을 하사했는데, 그는 아버지 펜의 이름을 따라서 펜실베이니아라 불렀다. ‘펜의 숲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인디언들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델라웨어 강과 슈일킬 강 사이에 그리스어로 ‘형제애’라는 뜻을 가진 도시 필라델피아를 설계했다. 그는 투표에 의한 총독 선출, 평등주의 지향, 인디언과의 공존공생 등 진보적 정책을 펼쳤지만, 그의 삶은 험난하고 불행했다.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반신불수가 되어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가 죽은 후 세월이 흐를수록 이주민과 인디언들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펜의 ‘거룩한 실험’과 ‘펜실베이니아의 꿈’은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미국,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혁명은 ‘공포’와 ‘신화’를 먹고사는가? 미국의 독립전쟁이 이를 증명한다. 8년간 지상전과 해전을 합쳐 1,300번 이상의 전투가 벌어진 미국의 독립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살상했다. 거기에서 살아남은 영국의 왕당파들은 캐나다로 피신해 미국의 독립전쟁으로 인해 캐나다가 탄생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역사가 크레인 브린턴은 “미국 혁명에는 공포정치의 흔적이 분명 있었다”고 했는데, 이는 탈출하지 못한 왕당파에 대한 가혹한 보복을 두고 한 말이다. 그후 미국은 전쟁 영웅 만들기에 혈안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서 독립전쟁 최초의 영웅인 폴 리비어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사실과 많이 다른 역사 왜곡으로 영웅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서 만들어진 신화라고 말한다.
1786년 여름, 전쟁 영웅이자 독립군 육군 대령인 대니얼 셰이즈는 노동자와 농민에게 불리한 법을 제정한 정치인에게 항의하기 위해 700명을 이끌고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로 행진하며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그후 셰이즈는 무장한 병력 1,000명을 이끌고 보스턴으로 진군했고, 정부군과 총격전을 벌였지만 주동자 13명이 사형당하고, 셰이즈는 도주했으나 이후 굶주림에 사망했다. 이게 바로 ‘셰이즈의 반란’이다. 이 반란의 파장은 엄청났다. 정부 인사들이 강력한 통제 수단을 만들기 위해 ‘국가 헌법’의 필요성을 역설하자 모든 주의 대표 55명이 ‘미국 헌법’을 만들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물론 이 미국 헌법은 기득권자들의 재산 증식을 위한 경제적 문서가 되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말이다.
미국사에서 187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를 ‘도금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이른바 ‘날강도 귀족’들이 사실상 대부분의 주의회와 연방사법부, 상원을 지배한 가운데 겉만 번지르르한 기만과 강탈의 기운이 충만한 때였다. 공직자들은 뇌물을 받고 횡령을 저지르는 일을 밥 먹듯이 했다. 인디언들에게 돌아갈 예산까지 착복해 보호구역 인디언들이 굶주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1880년대 미국의 철도 산업을 지배한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는 대표적 ‘날강도 귀족’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받았다. ‘날강도 귀족’의 전성시대에 미국은 과연 ‘문명시대’를 거치지 않고 ‘야만시대’에서 ‘데카당스시대’로 건너뛴 걸까? 이는 미국의 놀라운 압축성장이 초래한 진풍경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미국에서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가 ‘미국사와 미국 정치 이론의 필독서’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토크빌은 미국은 유럽과 달리 사회적 평등이 잘 실현되어 있고 사법권의 독립, 언론 자유, 지방자치 등 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만개하고 있는 것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돈에 대한 숭배가 인간에 대한 애정을 압도하는 나라를 미국 이외의 어느 곳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미국의 이상과 현실을 보는 듯하다.


‘아메리칸 드림’은 끝났다!


미국의 역사가 파란만장과 더불어 우여곡절을 수반한 성공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부른다. 미국 칼럼니스트 월터 리프먼은 “미국은 언제나 국가일 뿐만 아니라 꿈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아메리칸 드림’은 1956년에 출간된 찰스 라이트 밀스의『파워 엘리트』에 의해 실증적으로 부정되었다. 이 책은 3,000만 달러 이상을 가진 미국의 대부호 275명 가운데 93퍼센트가 상속에 의해 부자가 된 사람들이란 걸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그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신앙을 버리지도 않았다. 왜 그럴까?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은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자신의 성취 가능성에 대해 훨씬 더 높게 평가하고 미래를 낙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미국인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이념을 끊임없이 주입받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대부분의 사회현상에 이러한 이념을 적용하여 해석하고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 어린이들이 어릴 때 흔히 부르는 동요인, ‘별에 소원을 빌 때, 네가 누구이건 중요치 않아. 너의 꿈은 이루어질 거야’라는 가사는 이 이념의 일부를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인들에게 큰 힘을 발휘한 신화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미국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너무 큰 성공을 했다는 데에 있다. 미국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랠프 월도 에머슨이 미국이라는 몸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유럽이라는 회충’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유럽적인 정열을 미국적인 열정으로 대체시키’자고 했다는데, “우리의 역사 전체는 인류를 위한 신의 섭리의 마지막 노력과도 같다”는 그 자신의 말을 되돌려주어야 할 것 같다. 미국만 세계의 최고 선善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미국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다음과 같은 물음을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왜 정부는 현명한 소수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가? 왜 정부는 상처도 입기 전에 야단법석을 떨며 막으려 드는가?……왜 정부는 항상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며, 코페르니쿠스와 루터를 파문하고, 조지 워싱턴과 프랭클린을 ‘반역자’라 부르는가?”



▣ 차례


머리말 | 왜 미국은 드라마인가? … 5


왜 포카혼타스는 나오미 캠벨이 되었나? ‘포카혼타스 신화’의 탄생 … 15
‘추수감사절’인가, ‘추수강탈절’인가? ‘메이플라워’의 이상과 현실 … 27
펜실베이니아의 꿈은 어디로 갔나? 윌리엄 펜의 ‘거룩한 실험’ … 38
왜 청교도는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되었나? 뉴잉글랜드의 ‘마녀사냥’ … 49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원조인가? 벤저민 프랭클린의 성공학 … 60
혁명은 ‘공포’와 ‘신화’를 먹고사는가? 미국 독립혁명의 정치학 … 70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는가? ‘전쟁 영웅’ 셰이즈의 반란 … 80
인간은 ‘커다란 짐승’인가, ‘생각하는 육체’인가? 해밀턴파와 제퍼슨파의 갈등 … 90
왜 미국의 국가國歌는 호전적인가? 1812년 미-영 전쟁 … 101
‘보통 사람들의 시대’인가, ‘지배 엘리트의 교체’인가? ‘잭슨 민주주의’의 명암 … 113
왜 지금도 자꾸 토크빌을 찾는가? 알렉시 드 토크빌의『미국의 민주주의』 … 124
왜 찰스 디킨스는 미국 신문과 전쟁을 벌였는가? 1830년대의 ‘페니 프레스’ 혁명 … 134
“신이 무엇을 이룩했는가?” 시간과 공간을 압축시킨 전신 혁명 … 145
왜 에머슨은 “유럽이라는 회충을 몰아내자!”고 외쳤는가? 미국의 지적 독립선언 … 155
텍사스 탈취는 미국의 ‘명백한 운명’이었나? 미국-멕시코 전쟁 … 165
“선생님은 왜 감옥 밖에 계십니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프레더릭 더글러스 … 176
‘경쟁’ 아닌 ‘협동’으로 살 수 없는가? ‘뉴하모니’에서 ‘솔트레이크시티’까지 … 187
울분과 탐욕의 폭발인가?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 사회 … 198
‘거리의 소멸’과 ‘체험 공간의 팽창’인가? 전화의 발명 … 208
미국은 ‘야만시대’에서 ‘데카당스시대’로 건너뛰었나? ‘날강도 귀족’의 전성시대 … 219
‘백열등’이 ‘토지’의 문제를 은폐했나? 헨리 조지와 토머스 에디슨 … 230
‘미국은 영토 욕심이 없는 나라’인가? 조미수호조약 … 240
‘상상할 수도 없는 묵시록적 의미’인가? 알렌·언더우드·아펜젤러의 조선 입국 … 251
억만장자는 자연도태의 산물인가? 사회진화론과 칼뱅주의의 결합 … 261
기가 죽으면 저항 의지도 꺾이는가?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의 이론’ … 272
테일러가 마르크스보다 위대한가? 프레더릭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 283
왜 시카고 시민은 마피아를 지지했을까? ‘밤의 대통령’ 알 카포네 … 294
왜 킨제이는 ‘20세기의 갈릴레이’가 되었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킨제이 보고서’ 논쟁 … 305


주 … 316



▣ 본문 중에서


윌리엄 펜의 ‘거룩한 실험’은 닉슨에 의해 그 정점을 맞은 것인가? 워터게이트 사건이 닉슨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가혹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그의 데탕트 업적만큼은 인정을 받고 있다. 반면 독실한 퀘이커교도였던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1874~1964가 퀘이커 교리에 따라 ‘숭고한 동기와 원대한 목적을 지닌 위대한 사회·경제적 실험’으로 적극 지지한 금주법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거룩하건 거룩하지 않건 인간의 욕망을 존중하는 ‘실험’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펜실베이니아의 꿈은 어디로 갔나?」(본문 47쪽)


미국인들을 만나서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법치국가’로 세계인의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칭찬해주는 게 좋다. 미국인들은 경제적으로 세계 최강의 국가이면서도 의외로 사회적 현상에 대한 경제적 분석을 혐오하는 이상한 버릇을 갖고 있으니까 말이다. ‘계급’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건 물론이고 그 용어에 펄쩍 뛰는 게 미국인들이다. 계급 갈등이 없는 ‘아메리칸 드림’은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신화다. 이제 ‘셰이즈의 반란’과 같은 반란은 가능하지 않다. 오늘날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게 아니라 법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라는가?」(본문 89쪽)


1812년 전쟁의 와중에 탄생한 <성조기여 영원하라>의 노랫말은 ‘포화의 붉은 섬광’이라거나 ‘공중에 작열하는 폭탄’ 등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호전성이 두드러진다. 1889년 해군에서 이 노래를 국기 게양시에 공식 사용한 것까진 이해할 수 있지만, 어느 모로 보건 국가國歌로 채택하기엔 적합지 않은 노래였다. 가사 내용도 문제지만, 부르기도 어려운데다 가사를 외우기도 어렵다. 4절이나 되는 긴 노래라 외우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내용이 복잡해 1절만이라도 외우는 게 영 쉽지 않다. 이 노래는 1916년 우드로 윌슨 행정부에서 공식 행사 때마다 사용하는 사실상의 국가로, 1931년 허버트 후버 행정부에서 의회의 결의를 거쳐 국가로 채택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의 충격을 이겨내자는 전투성이 필요해서 그랬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이후 미국은 이 노랫말을 따라가면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외치는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국가적 차원의 ‘자기이행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sy’이라고나 할까? 「왜 미국의 국가國歌는 호전적인가?」(본문 111~112쪽)


미국-멕시코 전쟁은 많은 미국인에게 ‘명백한 운명’으로 여겨졌지만, 극소수나마 이 전쟁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다. 매사추세츠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으나 부와 명성을 좇는 화려한 생활을 따르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 속에서 글을 쓰는 초월주의자였다. 1846년 소로는 노예제도와 멕시코전쟁에 반대하는 의미로 인두세 납부를 거부해 감옥에 갇혔다가 친척 아주머니가 벌금을 대신 내준 덕분에 다음 날 풀려났다. 그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이 찾아왔다. 소로는 에머슨을 스승처럼 모셨고, 실제 에머슨에게서 많은 정신적 영향을 받았으며, 그를 도와 잡지 편집을 한 적도 있었다. 면회 온 에머슨이 물었다. “너는 왜 감옥에 있느냐?” 그의 답변이 걸작이다. “선생님은 왜 감옥 밖에 계십니까?” 「“선생님은 왜 감옥 밖에 계십니까?”」(본문 176~177쪽)


대표적인 날강도 귀족 중의 하나인 코르넬리우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 1794~1877는 자신을 속인 경쟁자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함으로써 그 시대의 정신을 대변했다. “당신은 나를 속였어. 허나 고소하진 않겠어. 법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내 손으로 직접 당신을 파멸시킬 거야.” 유산을 물려받은 밴더빌트의 가족은 손님들이 보석통을 찾아다닐 정도로 호화판 파티를 열어 ‘과시적 소비’의 본때를 보여주었다. 밴더빌트가는 1880년대 중반경 뉴욕 5번가 웨스트 사이드의 7개 구역 안에 거대한 저택을 7채나 갖고 있었으며, 모든 건축과 장식은 유럽 왕실이나 귀족 가문의 흉내를 냈다. 물론 다른 부자들도 모두 밴더빌트가의 흉내를 냈다. 부자들의 이런 ‘과시적 소비’는 1890년대까지 지속되었는데, 맨해튼에서 발행되는 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부호 가문에서는 종종 유럽에서 값비싼 그림과 조각품을 한 배 가득 구입해왔다”. 「미국은 ‘야만시대’에서 ‘데카당스시대’로 건너뛰었나?」(본문 224~225쪽)


보빙사를 보낸 보람도 없이 미국은 조선을 외면했다. 1884년 7월 7일부터 한국에 있는 전권공사의 자리는 변리공사 겸 총영사로 격하되었다. 이 때문에 푸트는 사임하고 귀국했다. 1886년 6월 9일 윌리엄 파커William H. Parker, 1826~1896가 내한할 때까지 해군무관 조지 포크George C. Foulk, 1856~1893가 임시 대리공사로 일했지만, 포크는 박봉에 시달려 업무 수행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조선에 대한 미국의 무관심은 미국이 조선에 진출한 주요 국가 가운데 서울 이외의 지역에 영사관을 설치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였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영토 욕심이 없는 나라였던가? 1905년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해주는 대신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말해주듯이, 결코 그렇진 않았다. 다만 바로 옆의 굶주린 ‘강도’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비교적 잘 먹고 사는 ‘강도’가 차악次惡일 수 있다는 점에선, 미국이 조선에 대해 욕심을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별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은 조선의 국가적 운명엔 더욱 비극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미국은 영토 욕심이 없는 나라’인가?」(본문 250쪽)


킨제이가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음을 입증하겠다는 듯 킨제이를 자신의 영웅으로 여기면서 킨제이의 연구 자료를 중요한 사업 기반으로 삼은 인물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휴 헤프너Hugh Hefner, 1926~다. 그가 1953년 창간한 『플레이보이』는 첫 표지 모델로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의 누드 사진을 게재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둬 ‘플레이보이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킨제이는 1956년 8월 25일 7,985번째 인터뷰를 하고선 급성 폐렴에 걸려 62세로 사망했다. 절망 속에서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난 것이다. 킨제이의 사후 발견된 「성 연구를 할 권리」라는 글에서 그는 “과학자들의 뜻을 꺾고, 위협하고, 이 분야의 연구를 중단하게 만들려고 활동해온 다양한 세력”에 비난을 퍼부었다. 킨제이연구소는 살아남았지만, 킨제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을 계속해야만 했다. 「왜 킨제이는 ‘20세기의 갈릴레이’가 되었나?」(본문 312쪽)



▣ 지은이 소개 __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하는 데 선도적인 구실을 해왔다.
2011년에는 세간에 떠돌던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고, 2012년에는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안철수 현상’을 추적했을 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를 화두로 던지며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한국인과 영어』, 『감정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교양영어사전』, 『안철수의 힘』, 『멘토의 시대』, 『자동차와 민주주의』,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 『강남 좌파』, 『룸살롱 공화국』,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전화의 역사』, 『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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