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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2 - 훙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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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2
〈훙산문화〉


지은이 이종호 | 쪽수 144쪽 | 판형 135×205
값 11,000원 | 분야 역사 > 문화 / 역사기행
ISBN 978-89-91945-82-1 04910 | 978-89-91945-83-8(세트)
출간일 2015년 10월 23일


키워드 훙산문화, 뉴허량, 둥산쭈이, 동이족, 치우, 신석기, 츠펑, 선훙산문화, 샤오허시문화, 싱룽와문화, 차하이문화, 푸허문화, 자오바오거우문화, 샤오허옌문화, 샤자뎬문화, 슈옌, 싼쭤뎬, 신러유적


중국은 문화대혁명 이후, 체제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고 인식하자 21세기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이라는 명목으로 대대적인 유적 발굴과 연구를 추진했다. 하상주단대공정이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이 국가 건설을 추진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5년 단위로 주도한 장기적인 국가 전략 프로젝트다. 하상주단대공정이 진행되는 동안 고대 유적지 17곳에 대한 새로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고 방사성 탄소연대측정이 새롭게 이루어졌다. 중국은 2000년부터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이라는 새로운 역사 공정을 실시했다. 이것이 랴오허 일대를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서는 1만 년 역사의 새로운 문명권으로 부각시키는 ‘랴오허문명론’의 단초다. 랴오허문명의 핵심은 훙산문화로, 이는 중국 훙산紅山인근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문화집합체를 말한다. 1955년부터는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시사하는 문화 일체를 ‘훙산문화’라 부른다. 훙산문화는 화하족이 중심이 된 중원의 황허문명보다 오래되었으며,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인더스문명보다도 1,000여 년 앞선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훙산문화를 세계에 자랑하는 이유다. 그러나 훙산문화 창조의 주역은 화하족이 아니라 동이족이다. 이는 훙산문화와 한민족 문화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짐작게 한다. 이 책은 훙산문화의 유적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그곳에서 발견되는 한민족의 흔적을 좇는다. 책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훙산문화라는 미답의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낄 것이다.


뉴허량 유적: 묻혀 있던 여신이 발견되다뉴허량牛河梁 유적이 발견된 뉴허량촌은 둥산쭈이에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젠핑과 링위안 중간에 있다. 이곳은 인근의 다른 지역과 달리 울창한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으며, 여기서는 제단, 여신묘女神廟, 적석총積石塚과 이집트와 유사한 형태의 피라미드, 성으로 둘러싸인 도시 형태와 돌로 쌓은 방형(사각형) 모양의 광장이 발견되었다. 중국의 학자들은 이 유적들을 근거로 ‘신비의 왕국’이 이 지역에 존재했음을 인정하고, 그 연대를 무려 5,500여 년 전으로 산정했다. 중국은 이들 뉴허량 유적 제1에서 제16지점 전체를 ‘국가고고유지공원國家考古遺址公園’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둥산쭈이 유적: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약 5,500년 전의 유적으로 추정하는 둥산쭈이東山嘴는 1979년에 발견되었는데, 뉴허량 유적지에서 약 5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카쭤현 둥산쭈이촌 커라첸줘이 멍구쭈자치현에 있다. 유적은 길이 60미터, 폭 40미터로 총 면적은 2,400제곱미터이다. 중국에서 둥산쭈이 유적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둥산쭈이 제단이 당시 훙산인들의 취락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천지·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공 제사 활동과 연관된 대형 유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둥산쭈이에서 발굴된 유물의 대다수는 제사 활동과 직접 연결된다.


동이족 치우 유적: 동북공정에 희생된 동이 우두머리의 전설
중국 정부가 치우와 황제가 전투했다는 줘루 전투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고 삼조시대를 천명하자, 삼조의 각 지역은 허베이성 장자커우시 줘루현 판산진의 황제성과 황제천을 정비한 것은 물론, 황제·염제·치우를 배알하는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을 건립했다. 중화삼조당 실내 중앙에 황제, 황제의 좌측에 염제, 우측이 뿔이 난 치우의 거대한 소상을 안치했고 벽면에 삼조의 치적을 그렸다. 줘루현 판산진에서 또 유명한 곳은 치우채蚩尤塞다. 치우채에는 천연 샘물인 치우천이 있어 풍부한 물이 나오며, 또 수령 1,000년이 넘는다는 소나무가 있다. 황제에게 패한 치우의 시신은 7등분해 일곱 곳에서 장사지냈다고 알려진다. 따라서 치우릉은 여러 곳에 있다. 알려지기는 동분 2개소, 서분 3개소, 남분 1개소가 있고, 산둥성의 원상현 난왕진에 1개소가 있다.


츠펑: 훙산문화의 중심지
훙산문화의 근거지라고도 볼 수 있는 츠펑赤峰은 한때 요나라의 수도인 중경中京이 있던 곳이다. 요나라에는 5개의 수도가 있었는데 그중 본부인 중경이 오늘날의 츠펑이다. 훙산은 츠펑시의 시가지인 훙산구에 있으며 훙산자연유적보호구紅山自然遺蹟保護區로 지정되어 있다. 츠펑시에서 중요한 곳은 2014년에 개관한 츠펑 박물관이다. 이곳의 전시품 중 샤자뎬夏家店 상층문화에서 발견되는 청동투구와 전투용 마차, 비파형동검은 츠펑이 당대에도 군사 지역이었음을 알려준다. 이 유물들의 연대는 고조선시대 무렵으로 추정된다.


샤오허시문화: 가장 오래된 신석기문화 유적
선훙산문화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샤오허시小河西문화다. 츠펑시 인근의 아오한기 샤오허시촌, 뉴구투향, 첸진잉쯔촌 등 10여 곳에서 발견된 샤오허시문화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연대가 오래된 신석기문화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샤오허시촌의 규모는 약 2만 제곱미터로 반지하로 된 반지혈식이 주로 발견된다. 이곳에서는 동북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도소인면상陶塑人面像이 발견되었다.


싱룽와문화: 세계 최초의 옥결이 발견된 곳
싱룽와興隆窪문화는 샤오허시문화의 후속으로, 기원전 6200년까지 올라가는 신석기문화 유적이다. 특히 세계 최초의 옥결인 결상이식이 발견되었는데 옥결은 대부분 집 터 무덤에서 발견된다. 총 6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이곳 마을은 중국에서 가장 넓고 보존이 잘된 신석기시대 대규모 취락으로, 2012년 7월 싱룽쥐興隆泃 유지 제2지점에서 발견된 도소남신상陶塑南神像은 중국의 훙산문화를 보다 향상시킨 유적으로 설명된다. 도소남신상은 현재 아오한기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차하이문화: 용 숭배 사상의 흔적
차하이査海문화의 발굴은 1987년부터 착수했으며 발굴 면적은 약 1만 제곱미터다. 이곳에서는 건물 터 55곳, 묘지 15곳이 발견되었다. 빗살무늬토기, 돼지 뼈, 탄화된 은행나무 열매 등과 함께 44점이나 되는 옥이 출토되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옥은 싱룽와문화의 ‘세계최고옥世界最古玉’이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옥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돌로 쌓아 만든 석소룡石塑龍과 2점의 용문도편龍紋陶片도 발견되었다.


푸허문화: 갑골문화의 원조
푸허富河문화는 1962년 시라무룬강 유역인 네이멍구자치구 바린쭤기 푸허거우먼에서 발견되었다. 푸허구문 유적지는 남북 200미터, 동서 300미터의 대규모 취락지로 150여 곳에서 반지하식 주거 유적이 나왔다. 푸허문화가 특히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연대가 오래된 복골卜骨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복골에서는 불로 지진 흔적만 보이는데, 이 복골은 중국이 갑골문화의 원조로 보고 있던 허베이·허난·산둥반도의 룽산문화보다 훨씬 빠르다.


자오바오거우문화: 동이족 유물의 보고
자오바오거우趙寶溝문화는 1986년 발견된 기원전 5000년경의 문화다. 자오바오거우 유지의 총 면적은 9만 제곱미터로 불에 탄 집 터 흔적인 회갱 140여 개가 발견되었다. 세계 최초의 봉황 모양 토기인 ‘중화제일봉中華第一鳳’이 출토되었고 동물 문양의 채도가 발견되었으며 동이족의 간판 유물이라고 볼 수 있는 지자문토기, 세석기 등 랴오허 유역의 동이 지역에서 보이는 일반적인 특징들을 모두 볼 수 있다.


샤오허옌문화: 발달한 농경문화의 흔적
샤오허옌小河沿문화는 서쪽으로 네이멍구 동남부, 동쪽으로 차오양 일대, 북쪽으로 시라무룬강, 남쪽으로 진시 일대로 훙산문화를 포괄한다. 현재까지 발굴지는 100여 곳에 달하는데 아오한기에 50여 곳이 집중되어 있다. 취락 규모는 대체로 1~2만 제곱미터로 합장 무덤도 발견된다. 샤오허옌문화의 거주지는 단실과 쌍실로 나뉜다. 이는 당시에 집안에 창고를 따로 둘 정도로 보관할 작물이 많이 소출되었다는 것을 뜻하므로, 발전된 농경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 소조상이 나왔는데 이중에는 곰의 형상으로 추정되는 것도 발견되었다.


샤자뎬 하층문화와 상층문화: 고조선의 얼이 숨쉬는 곳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의 분포가 가장 밀집된 차오양 지역에서 발견된 유적지만 해도 1,300여 곳이나 되는데, 이곳에서는 빗살무늬토기, 돌무덤, 비파형동검, 특히 같은 시기 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치雉를 가진 석성’등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그동안 한민족의 조상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부단히 거론된 것이다. 기원전 50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선양시의 신러문화 유적지는 답사자들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하층문화는 7,200년 전, 중층문화는 5,000년 전, 상층문화는 4,000~3,000년 전인데 상층문화는 고조선과 연대가 비슷하다.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시리즈 근간 소개


유적을 알면 역사가 보이고, 역사를 알면 시대가 보인다.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시리즈는 자칫 고루해질 수 있는 역사의 순간을 생동감 넘치는 오늘의 사건처럼 전하기 위해 유적 중심으로 기술한 새로운 역사서다. 저자인 이종호 박사의 다년간에 걸친 현장답사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고품질 사진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각종 역사 유적과 유물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것의 의의를 짚는다. 이로써 지금까지 무미건조한 과거의 사실로만 소비된 역사의 순간을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독자 앞에 되살려낸다.〈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시리즈는 고조선 편, 훙산문화 편을 필두로, 광개토대왕비, 국내성 등 중국의 고구려 유적과, 임진강·한탄강 등지의 국내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한 기록인 ‘고구려’ 편, 『삼국유사』에 등장한 현장을 직접 찾아, 일연이 쓰고자 한 참뜻을 그대로 풀어낸 ‘삼국유사’ 편, 강화도에서 출발해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향한 바닷길에서 만난 삼별초의 흔적을 기록한 ‘삼별초’ 편이 출간 예정이다.


▣ 차례
들어가는 말


제1부 훙산문화 유적 답사


제1장 뉴허량 ‘신비의 왕국’
뉴허량 유적: 묻혀 있던 여신이 발견되다
둥산쭈이 유적: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제2장 동이족 치우 유적


제3장 신석기를 아우르는 훙산문화
츠펑: 훙산문화의 중심지
선훙산문화와 협의의 훙산문화
■ 샤오허시문화
■ 싱룽와문화
■ 차하이문화
■ 푸허문화
■ 자오바오거우문화
■ 샤오허옌문화
■ 샤자뎬 하층문화와 상층문화


제2부 훙산문화란 무엇인가?


제1장 중국의 작위적 역사 다시 쓰기


제2장 치우와 중국의 동북공정


나가는 말





▣ 본문 중에서
훙산문화의 북쪽 경계는 일반적으로 시라무룬강을 넘어 네이멍구 초원에 이르며 동쪽 경계는 이우뤼산을 넘어 시랴오강이 있는 서안 일대까지 다다른다. 남쪽 경계의 동쪽 끝은 보하이 연안, 서쪽 끝은 옌산산맥을 넘어 허베이평원 북부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의 훙산문화는 랴오허 일대를 모두 포함하며 연대는 기원전 8000~7000여 년으로 올라간다. 좁은 의미의 훙산문화는 네이멍구와 랴오닝성의 접경 지역인 츠펑, 차오양, 링위안, 카쭤, 젠핑 등을 중심으로 분포된 유적지를 말하며 연대는 기원전 3500년으로 올라간다. 훙산문화를 좀더 구체적으로 분류하면 선훙산문화와 협의의 훙산문화로 나뉜다. 선훙산문화에는 샤오허시小河西문화, 싱룽와興隆窪문화, 차하이査海문화가 포함되며 후자에는 푸허富河문화, 자오바오거우趙寶溝문화, 훙산문화가 포함되고, 후 훙산문화로는 샤오허옌小河沿문화를 거론하는데 이들 사이에 계승과 공존·교차 등 다양한 관계가 존재함은 물론이다.
(「들어가는 말」, 10~13쪽)


적석총은 중국과 전혀 다른 묘제다. 적석총은 랴오허 일대에서 한민족의 터전으로 이동하지만 중원 지역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중국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土壙墓가 주류를 이루었고, 주나라 때에 들어서야 비로소 나무로 곽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 묘가 유행했다.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풍습은 오랜 기간 변하지 않고 완고하게 그 민족 고유의 전통으로 내려온다. 특히 무덤은 지역 집단의 공통된 참여를 통해서 축조되므로 무덤의 성격에 따라 무덤을 만든 민족의 유사성을 구분할 수 있다. 중국과 동이족의 무덤이 원천적으로 다른 것은 이들 문명이 근원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민족이 타 민족을 정복했을 경우 선주민의 묘를 파괴하는 분묘 파괴 행위가 나타난다. 이것은 분묘가 자신과 선조와의 계승 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훙산문화와 동일한 적석총을 채용한 나라는 고조선이다. 그러므로 고조선문화의 전 단계인 훙산문화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가를 이룩했던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다. 적석총은 한반도와 만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한민족의 전형적인 무덤으로 고구려와 백제 초기까지 이어진다. 동이족의 근거지라고 간주되는 훙산 지역은 물론, 만주와 한반도에서 적석총이 계속 이어져왔다는 것은 민족이 계승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이족이 중국과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다고 부단히 주장하는 이유다.
(「톺아보기: 적석총」, 31~33쪽)


훙산인들은 정신문화 범주에 속하는 옥이야말로 물질문화를 배척하고 정신문화를 중시하는 절대적인 표상으로 생각했다. 옥은 장식으로서 예술적 가치 이외에, 신분과 지위를 상징하는 정치적인 의미와 옥기를 매장해서 영생을 기원하는 종교적 의미도 갖고 있다.……옥 문화는 일찍부터 한반도에도 전파되었다.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선사 유적지에서 ‘국내 최초의 신석기시대 결상이식(한쪽을 뚫은 옥 귀걸이)’이 발견되었다. 문암리 유적은 그동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유적으로 알려진 강원도 양양군 오산리 유적과 비슷하거나 보다 오래된 것으로 훙산문화와 시기가 엇물린다. 이들 유적지에서 초기 신석기문화의 양대 토기로 인식하는 덧띠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가 함께 출토되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인 신희권은 차하이와 싱룽와에서 발견된 토기와 문양을 그려 넣은 기법이나 토기의 기형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 안도리 1313번지에서 발견된 6,000여 년 전 신석기 무덤에서도 결상이식이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 패총에서 몸체 정면을 하늘을 향해 나란히 눕힌 동시대 사람 뼈 2구, 불 땐 자리가 발견되었는데, 인골은 손에 조개 팔찌를 차고 있었고 둥근 고리의 결상이식 등을 소지하고 있었다. 뉴허량 지역의 신비의 왕국에서 발견된 결상이식과 같은 형태의 옥 귀걸이가 한반도 중부인 강원도를 비롯해 한반도 남부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당대의 훙산문화가 한반도 전 지역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단적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톺아보기: 훙산의 옥 문화」, 39~40쪽)


빗살무늬토기는 랴오허 하류의 선양시 신러문화와 샤오주샨문화는 물론, 허베이성·산둥반도 등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며 네이멍구 지역과 러시아 연해주에서도 잇달아 발굴된다. 네이멍구 지역 훙산 유적인 싱룽와 유적 최하층에서도 빗살무늬토기가 대거 쏟아졌는데 이것들의 연대는 기원전 6200년경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는 압록강·대동강·재령강·한강 등 서해안 일대와 두만강 유역과 동해안 그리고 남해안과 남해 도서 지방 등,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며 이들 토기의 시대 편년은 대체로 남과 북이 비슷하다. 특히 랴오허 유역과 한반도의 빗살무늬토기의 태토胎土 성분도 서로 비슷하다. 또한 초기 빗살무늬토기 유적에서 세석기나 타제석기가 마제석기와 함께 출토되고 있는 점도 주목 대상이다. 러시아 연해주의 카마 신석기 유적에서 발견된 토기도 기원전 4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반도의 첨저형尖底型 빗살무늬토기와 유사하다. 주로 청천강 이남에서만 출토되던 첨저형 빗살무늬토기가 연해주에서도 나왔다는 것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일대가 고대에 동일 문화권을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톺아보기: 빗살무늬토기」, 107~109쪽)


▣ 지은이 소개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프랑스 교육부가 주최한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과학삼국유사』,『과학삼국사기』,『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세계최고의우리문화유산』,『황금보검의비밀』,『미스터리와 진실』(전3권),『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1~3』등을 집필했다.


윤명도(석하사진문화연구소)
잡지사 프리랜서 사진 기자(1982년~1995년)
『뉴시스』영상제작국 객원 기자(2008년~2011년)
「윤명도역사스페셜」,「윤기자여행사진」연재
세계닷컴「윤석하 포토에세이」연재(2007년~2012년)
『동아일보』「고구려 이야기」사진 연재(2014년 1월~2014년 6월)
KBS <3,000년의 퍼즐> 방송(2009년)
동북아 지역(중국·몽골·연해주·러시아) 한국 고대사 관련 역사 사진 전문가
게티이미지 역사 관련 이미지스톡 작가
현재 석하사진문화연구소(http://blog.naver.com/2908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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