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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숲에서 나를 돌아보다
- 미디어 연구자 4인의 체험기


지은이 이창근, 강준만, 조흡, 원용진 | 쪽수 256쪽 | 판형 145×210(국판 변형, 무선) | 값 13,000원 분야 인문사회 > 교양 | ISBN 978-89-5906-401-4 03300 | 출간일 2016년 6월 7일


키워드: 미디어, 대중문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영화, 음악, 신문방송학, 『선데이서울』, 저널리즘, 상업주의, 오디오파일, 축음기, 세운상가, 충무로, 롤랑 바르트, 할리우드, <국제시장>, 문화정치, 문화 연구, 메타 연구, 루이 알튀세르, 스튜어트 홀, 패디 훠넬, 미디어 능력, 자크 랑시에르, 미디어 비평, 스크린쿼터



▣ 출판사 서평



나에게 미디어는 무엇이었는가?
“내 인생을 오롯이 물들였던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영화, 음악에 대한 추억”


세계적인 미디어 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마셜 매클루언은 『미디어의 이해』(1964년)에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했다. 이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내리거나 사고하도록 하는 모든 과정에서 미디어가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다. 미디어는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미디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매스미디어’ 사회라고 하는 것이다. 미디어로 대표되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영화, 음악 등에서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정보가 재가공되고 재생산되어 대중에게 전파된다. 다시 말해 매스미디어 사회는 ‘정보의 홍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중은 그 정보의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지 못하고 매스미디어가 생산해내는 정보를 그대로 수용할 뿐이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서는 정보의 폭포라고 해도 좋은 정도로 수많은 정보로 흘러넘친다. 실시간으로 현대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과 사고, 즉 정보가 수용자들을 유혹한다. 디지털 속도는 가히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수용자들이 그 수많은 정보를 미처 알기도 전에 다른 새로운 정보들과 만나게 된다. 어쩌면 자신이 정보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 정보들이 요구한 것에 자기 자신을 적응시키는 아이러니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사이 수용자들의 존재 양식과 사유 방식은 회복 불가능하게 변해간다. 그런데 한편으로 존 네이스비트의 “우리의 삶에 더 많은 하이테크(첨단기술)를 도입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하이터치(고감성) 균형을 찾게 된다”는 말처럼 아날로그에 대한 복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이창근, 강준만, 조흡, 원용진은 미디어 학자다. 30여 년 전 한 대학원에서 만난 이들이 공통의 전공인 매스미디어에 대한 각자의 체험과 기억과 생각을 풀어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각자가 관심을 가졌던 매체를 중심으로 살아온 삶의 궤적과 체취가 묻어나 있다. 1980년대 초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학에서 처음 만나 강의를 같이 들었고, 강의실 밖에서 유학생으로 동고동락했다. 시간을 아껴 전공 책과 씨름해야 하는 시절이었지만, 이들은 주말이면 가끔 모여 전공과 외국 생활의 애환, 이론과 현실의 괴리, 무엇보다 많은 사람의 투쟁과 희생에도 좀처럼 민주화되지 못하는 한국의 정치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꿈과 열망’이 있었다. 그 ‘꿈과 열망’에 세속적인 면이 없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공부 자체에 대한 게 훨씬 더 컸다. 또 위스콘신대학 한국 유학생 모임인 ‘인문사회협의회’를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우리들의 시각』이라는 기관지를 발행했다. 이 모임은 한국 사회 내 진보적 운동 조직과 협조하고, 그들에게서 배우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에서 언론과 미디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거나 이에 관해 글을 쓰는 사람은 수천 명은 될 것이다. 이들이 남긴 글은 후대의 학자들이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미디어 연구자 4명이 말년에 자신의 체험기나 증언을 남긴다면, 이는 좋은 사료가 될 수 있다. 엄밀하고 객관적이지만 창백한 분석 자료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문사회과학의 목적이 인간과 그들이 사는 사회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제공해주고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있다면, 이를 직업으로 삼았던 학자들의 체험과 가치관과 실천에 관한 기록은 한 시대의 모습을 엿보게 하는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 타임라인 위에서 나를 돌아보다


이창근 교수는 경제적으로 전근대적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의 이행기에, 정치적으로는 1950년대 문민 독재시대에서 군부 독재 시기를 거쳐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가 달성된 변혁의 시대에 살았다. 6․25 전쟁에 이어 첫 공화국 정부였던 자유당 정권은 4·19 혁명(4학년)으로 막을 내렸으며 이듬해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로 시작된 군부 독재시대는 10월 유신(대학 3년)으로 극에 달한 뒤 10·26 사태(TBC 기자)로 18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12·12 군사쿠데타로 서울의 봄은 다시 군부 독재시대로 대체되고 말았다. 1987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회복되었고,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5·16 군사쿠데타 이후 30여 년의 군부 독재시대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교수 4년차). 반세기 동안 지속된 정치·경제적 변동이 이창근 교수의 삶을 관통한 한 흐름이었다면 같은 시기에 전개된 미디어의 대변혁 또한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20세기는 전자매체의 세기였고 특히 후반기에 등장한 컴퓨터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인간의 의사소통 방식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전화, 레코드, 영화, AM, FM, 트랜지스터 라디오, 흑백·컬러 TV, 케이블 TV, IPTV, 텔스타 위성 전화, IBM PC, XT, AT, 펜티엄, 팩스, 윈도, 이메일, 월드와이드웹, 휴대전화, MP3, 문자……. 반세기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창근 교수가 배우고, 사용하고, 즐긴 미디어들이다. 이들은 오관(五官)을 확장시켜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 도구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을 테크놀로지가 요구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몰아세웠는지 모른다. 이 도구들을 사용하기 위해 복잡한 사용 방법이나 프로그램된 방식을 배워야만 했고, 또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사고와 행동양식을 기기에 적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제2의 기계시대, 4차 산업혁명의 막이 오르고 있다. 극동이라는 지구 한 모퉁이에서 미디어 혁명의 여명기에 태어나 라디오, 텔레비전의 전성기를 보낸 이창근 교수는 생각하는 컴퓨터가 손짓하는 ‘멋지고 놀라운 신세계’로 이끌려가고 있다.


어느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시대 분투기


강준만 교수의 프로페셔널한 신문 수집은 전북대학교 교수로 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뉴욕타임스』는 물론이고 다니던 학교의 동네 지역신문부터 대학신문까지 모두 챙겨놓았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시 서울세관에서 이사짐을 보고 세관원이 좀 어이없어 했을 정도라고 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각종 정치적 성명서와 전단이 난무하던 시절이었다. 대학 총학생회는 물론 단과대학 학생회, 학과학생회 성명서와 전단까지 모았다. 각종 교수 단체와 외부 운동단체들이 발표한 성명서와 전단도 모았다. 나중에 정리해서 기록해두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책과 자료가 학교 연구실을 가득 채운 뒤, 집안 곳곳에 파고 들어 나중엔 화장실까지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버리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는데, 강준만 교수가 내린 선택은 탈출이었다. 별도의 사무실을 얻어 책과 자료를 보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한때는 수십 종의 신문을 정기 구독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든 중앙지는 물론 지역 일간지까지 구독했다. 왜 이런 수십 종의 신문을 정기 구독했을까? “내겐 야망이었다. 나는 평소 한국 사회가 빨리빨리 속도전으로 치닫는 탓인지 자신의 언행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는 걸 개탄해왔기에, 그걸 바로잡는 데에 일조할 수 있는 실명비판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취지에서 한국 최고의 인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자 했다.”
책도 부지런히 사들였다. 한동안 책값으로만 매월 200만 원 이상을 썼다. 2011년 덴버(교환교수)에 있을 때에도 아마존에서 중고 책 쇼핑에 빠졌고, 1년 동안 총 8,048달러 어치의 책(1,276권)을 구입했다. 서점에서 직접 산 책도 많았으니 그것까지 합하면 1만 달러 이상을 책 쇼핑에 바쳤다. 아마존의 전자책 킨들이 있지만, 강준만 교수가 왜 ‘아날로그형 인간’을 자처했겠는가. 강준만 교수는 신문의 죽음에 맞춰 자신도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신문 구독률이 14.3퍼센트(2015년)라는 것은 ‘신문의 죽음’을 뜻한다(1996년 69.3퍼센트). 그러나 강준만 교수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종이신문을 읽고 내일도 읽을 거라고 말한다. 종이신문이 없는 일요일 아침이 아쉽지만, 그날은 교회에 가서『성경』을 읽는다.


오디오파일이 영화를 연구하게 된 이유


“시작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음산했다. 저음이 낮게 깔리다가 독주악기와 교차되면서 주제를 반복하는 그런 음악이었다.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 충격이었다. 머리가 쭈뼛하고 몸이 꼬이면서 오싹한 한기까지 느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몸이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한마디로 이전의 어떤 음악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신세계였다. 신기한 것은 그 음반을 틀 때마다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다른 판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지각적 떨림과 머리가 멍해지는 경험이 유독 그 음반을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이 조흡 교수가 생애 최초로 느꼈던 ‘오디오파일(audiophile)’ 경험이다. 조흡 교수는 대학 1~2학년 때 8개월이나 되는 긴 방학 동안 그 반절의 시간을 오디오에 소비했다. 하루 건너 한 번씩 아침에 일어나면 청계천 6가 중고서점거리에 있는 단골서점이었던 ‘외국서적’에서 새로운 원서가 나왔는지 확인한 다음 세운상가까지 걸어가 순례하듯 오디오숍 한 군데씩 들러 잡지에서 보았던 앰프며 스피커를 들어보고 만져보고 스펙이나 가격을 물어보면서 당장에라도 가격만 맞으면 살 수 있을 것처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세운상가에 있는 모든 가게를 훑어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린 곳은 당시 최고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충무로 오디오 전문점이었다. 충무로는 세운상가와 차원이 달랐다. 충무로에서는 영제, 미제, 독일제, 스위스제 전문 오디오를 구할 수 있는 그야말로 명기(名器)들의 집합소였다. 전설로 전해지던 알텍(Altec) 스피커, 리복스(Revox) 릴 테이프, 마란츠 7 콘트롤 앰프 등을 직접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으며 눈으로나마 그 제품들을 소유할 수 있는 꿈의 장소였다.
조흡 교수는 오디오를 들으며 자주 현실을 초월한 고조된 희열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르고 유학을 가서 책을 읽다가 프랑스 문화학자 롤랑 바르트의 ‘주이상스(Juissance)’ 이론을 접하게 된다. 이 이론은 오금이 저리고 넋이 나가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는데, 현실세계를 벗어나 또 다른 층위의 세상으로 진입해 전혀 새로운 몰아지경에 빠져드는 이 경험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유의 기회이자 해방의 순간이라는 것이다. 주이상스는 몸이 갖고 있는 물질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수용자의 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관능성인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 정점은 오르가슴의 순간과 맞닿아 있다. 성적 오르가슴은 몸이 모든 사회와 문화적 영역을 초월했을 때만 가능한 개념이다.
이 지각적 경험은 훗날 영화를 가르치면서 아주 소중한 비판적 자산이 되기도 했다. 음악이 듣고 느끼는 직접적인 지각적 자극이라면, 영화는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음악이 영화에 비해 감성을 더 직접적으로 생산해 청중을 그 정서적 상태에 머물게 만드는 경향이 강한 반면, 영화는 한걸음 더 나아가 영화에서 자극받은 느낌의 강도가 관객의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갖고 있었다. 음악도 어느 시인의 표현처럼 ‘그대’가 그리운 것은 그대가 아니라 ‘그때’가 그리운 것일 수 있듯이 음악이 시대와 사건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문화연구자의 미디어 운동 분투기


원용진 교수는 20년 넘게 미디어 학자․운동가로 활동해왔다. ‘문화 연구’의 자기 성찰적 ‘메타 연구’를 촉발한 데는 원용진 교수의 논문이 일조를 했다. ‘문화 연구’의 정체성을 묻는 의제를 던지고, 사회변혁 운동의 참여를 ‘문화 연구’의 목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 특히 대중의식과 대중 생활의 변혁에 기여할 가능성을 문화연구자가 모색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러면서 ‘문화 연구’가 아카데미 너머를 바라보고, 그곳에서 학문적 성패 여부를 찾자고 역설했다.
원용진 교수는 1998년 시민사회 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뎠다. 직접 조직을 만들고, 조직적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라는 이름의 문화운동 단체 설립에 힘을 보탰는데, 동인지 성격의 진보적 문화이론지 『문화/과학』 편집인이 중심이 되어 만든 조직이었다. 문화 이론에 관심을 가지며 이론과 실천의 이분법적 도식에 불만을 느껴왔던 연구자와 운동가가 한데 모여 벌인 일이었다. ‘문화연대’는 서태지, 이승환, 조용필 팬클럽 등과 함께 가요순위 프로그램 폐지를 위한 범시민적 운동을 펴나갔다. 이때 같이 활동했던 시민들은 자신의 활동을 사회봉사 활동으로 이어갔고, 가요순위 프로그램 담당자와 함께 연예 영역이 지닐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같이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2000년에는 제1기 KBS 시청자 평가원으로 활동했으며, 2002년에는 EBS 옴부즈만 프로그램 <지금은 시청자 시대>의 사회를 맡기도 했다. 당시 EBS 내 모든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를 만나 제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제작상의 어려움을 듣고, 그것을 사장에게 전하는 역할, 시청자의 불만을 제작자들에게 전하는 일을 해냈다. 또 독립영화단체와 함께 영상진흥책에 미디어센터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정책 운동을 벌였고, 그 결과 2002년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서울 광화문에 서울영상미디어센터를 설치한다. 2004년에는 마포시민단체협의회, 마포구청, 서강대학교를 콘소시엄으로 엮어 학생들과 함께 소출력 FM 라디오 방송 사업자로 참여했다. 2014년에는 수원영상미디어센터가 설립되어 현재까지 의결기구인 운영위원회의 운영위원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 차례


책머리에 ․ 5


제1장 미디어 타임라인 위의 나
나의 삶을 휘감았던 두 소용돌이 ․ 13 미디어에 대한 1950년대의 기억 ․ 17 처음으로 재미를 붙였던 영화 ․ 19 라디오 ․ 24 라디오와 정치 ․ 29 4·19 혁명 ․ 31 라디오 오락 프로그램에 푹 빠졌던 까까머리 시절 ․ 33 흑백 텔레비전 ․ 37 첫 전자 미디어 세대? ․ 40 Fast Forward : 말단 기자 시절 ․ 42 텔레비전 방송 기술의 전환기 ․ 46 팀워크로 만드는 텔레비전 방송 뉴스 ․ 52 유신체제의 종말 ․ 56 서울의 봄 ․ 58 한 지붕 네 가족 ․ 62 다시, 타임라인 위에 서서 ․ 65


제2장 신문과 나: 어느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 시대 분투기
내겐 엄청난 축복이었던 ‘메디슨 시절’ ․ 73 왜 책이나 잡지에 고춧가루가 박혀 있었나? ․ 77 『선데이서울』을 어떻게 구해서 읽었더라? ․ 80 ‘가성비’가 크게 떨어지는 신문 스크랩 ․ 84 수십 종의 신문을 정기 구독하던 시절 ․ 87 실명비판을 위한 인물 데이터베이스 ․ 91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의 삶 ․ 95 나에겐 책도 저널리즘이다 ․ 100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자 ․ 103 “치어리더 강준만: 아, 내가 치어리더였다” ․ 111 속도가 생명인 ‘빨리빨리 사회’에서 성찰은 가능한가? ․ 113 ‘증오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 ․ 116 “이정재 사진을 전지현 사진으로 바꾼 이유” ․ 123 신문의 죽음과 나의 죽음 ․ 127


제3장 오디오파일의 영화 연구: 주이상스와 문화정치
오디오파일의 탄생 ․ 133 더스티 스프링필드와 주이상스 ․ 143 이데올로기에서 감성이론으로 ․ 153 맥락의 차이: 할리우드와 한국 영화 ․ 163 디지털 경제와 한국 영화 ․ 172 감성과 문화정치의 가능성 ․ 181


제4장 문화연구자의 미디어 운동 분투기
이론과 실천, 그 사이 ․ 195 대중 탓에 생긴 갈등 ․ 204 ‘미디어 생산자’를 만나다 ․ 219 시민들과 판을 벌이다 ․ 236 미디어 정책 참여 ․ 245



▣ 본문 중에서


반세기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내가 배우고, 사용하고, 즐긴 미디어들이다. 이 점에서 이들 미디어는 나의 오관(五官)을 확장시켜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해준 도구들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 미디어는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가 지적한 것처럼 인간인 나를 테크놀로지가 요구하는 특정한 방식으로 몰아세웠는지 모른다. 나는 이 도구들을 사용하기 위해 복잡한 사용 방법이나 프로그램된 방식을 배워야만 했고, 또 그것이 요구하는 대로 내 사고와 행동양식을 기기에 적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느 면에서 나는 이 미디어를 편리하게 사용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 도구들이 요구한 것에 나 자신을 적응시켰고, 그사이 내 존재 양식과 사유 방식은 회복 불가능하게 변해갔는지 모른다. 문자를 모르고 말만 했던 호메로스 시대의 구술 인간이 그랬고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책을 읽은 인간도 그렇게 변해갔다. 「이창근: 미디어 타임라인 위의 나」(본문 69~70쪽)


나의 책 사랑은 신문 사랑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종이신문이 좋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종이신문은 죽어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5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종이신문 구독률은 14.3퍼센트로, 1996년의 69.3퍼센트에서 55퍼센트포인트나 감소했다. 특히 20대의 종이신문 이용시간은 하루 평균 2.5분(150초)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방법의 차이 때문이겠지만, 이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2012 한국 미디어 패널조사’에선 가구당 신문 구독률이 10가구에 1가구꼴인 11.6퍼센트로 추락한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종이신문 구독은 계속 하락세를 치닫고 있으니, 이 정도면 ‘신문의 죽음’이란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신문의 죽음에 맞춰 나 역시 죽어가고 있다. 디지털 속도 전쟁이 거스를 수 없는 문명사적 변화라면 체념하는 건 물론 수긍하고 적응해야겠지만, 이젠 좀 나이가 먹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게다가 우리의 삶에 더 많은 하이테크(첨단기술)를 도입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하이터치(고감성) 균형을 찾게 된다는 존 네이스비트(John Naisbitt)의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면, 소규모로나마 아날로그에 대한 복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게 되어 있는바, 내 연명 공간도 존재하는 셈이다. 「강준만: 신문과 나」(본문 129~130쪽)


나는 대학 1~2학년 때 8개월이나 되는 긴 방학 동안 대략 그 반절의 시간을 오디오에 소비했다. 하루 건너 한 번씩 아침에 일어나면 청계천 6가 중고서점거리에 있는 내 단골서점이었던 ‘외국서적’에서 새로운 원서가 나왔는지 확인한 다음 세운상가까지 걸어가 순례하듯 오디오숍 한 군데씩 들러 잡지에서 보았던 앰프며 스피커를 들어보고 만져보고 스펙이나 가격을 물어보면서 마치 당장에라도 가격만 맞으면 살 수 있을 것처럼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엔 제대로 대응하다가 내가 너무 자주 방문하자 가게 주인들도 나를 알아보고 그냥 무시할 정도였다. 결국 주인의 간섭 없이 혼자서 기계를 살펴보고 테스트도 해보기에 이른 것이다. 세운상가에 있는 모든 가게를 훑어보고 나서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린 곳은 당시 최고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충무로 오디오 전문점이었다. 「조흡: 오디오파일의 영화 연구」(본문 140~142쪽)


나 혼자 동분서주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고픈 것도 아니다. 그 길을 걷던 중에는 같이 책을 읽어주고, 토론하는 이도 있었고, 혼자 걷는 길이 외로울까봐 발걸음을 맞춰주었던 동지도 있었다. 아직도 그들과 우정의 끈을 놓지는 않지만 글을 적는 동안에 그들의 이름과 행색을 일일이 기록하진 못했다. 운동하는 미디어 문화연구자로 만들어준 것은 그 수많은 친구들이다. 그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여기 같이 책을 적은 세 분의 선배도 그런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용기를 주던 이들임은 물론이다. 간혹 의견이 맞지 않아 발끈해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부끄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선배께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터무니없는 내용의 글을 보냈고, 이후 사과하는 못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도와주고, 들어주고, 손뼉쳐주심에 감사의 말을 전한다. 「원용진: 문화연구자의 미디어 운동 분투기」(본문 254쪽)



▣ 지은이 소개


◈ 이창근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와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위스콘신-매디슨대학에서 언론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양방송(TBC)․KBS 기자, 한국방송학회 부회장, 한국언론학회장을 역임했다.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주로 방송 저널리즘, 방송제도, 미디어 역사에 관해 연구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세계 방송의 역사』(공저), 『매스미디어 심리학』(공역), 『일본의 방송제도』(공역) 등이 있고, 「‘적절한 불편부당성’(due impartiality) 기준의 역사와 성격에 대하여」, 「공영방송의 공공가치 개념에 대한 이론적 검토」 등이 있다.


◈ 강준만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조지아대학에서 신문방송학 석사학위, 위스콘신-메디슨대학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년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다. 저서로는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강남 좌파』, 『김대중 죽이기』, 『서울대의 나라』 등이 있다.


◈ 조흡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과 위스콘신-매디슨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연구를 전공했다. 현재 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에서 영화와 문화연구를 가르치고 있다. 주요 연구 관심사는 대중문화의 수용자 연구와 감성을 바탕으로 한 문화정치이며, 이를 위해 서구문화 이론을 비판적으로 평가․수용․보완해 한국의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문화이론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지를 연구한다.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과 대중문화연구소를 맡아 이끄는 동안 이 책의 필자들과 함께 ‘소통포럼’을 진행했다. 저서로는 『영화가 정치다』, 『의미 만들기와 의미 찾기』 등이 있다.


◈ 원용진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위스콘신-매디슨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Communication Arts)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언론정보학회장, 한국영상문화학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새로 쓴 대중문화의 패러다임』, 『텔레비전 비평론』, 『PD 저널리즘』, 『광고 문화 비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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