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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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별곡
혼돈의 시대
1897년 대한제국 선포에서 1950년 한국은행 설립까지


지은이 차현진 | 쪽수 344쪽 | 판형 152×225(신국판)
값 16,000원 | 분야 경제학/경제일반 > 경제이야기
ISBN 978-89-5906-402-1 03320 | 출간일 2016년 6월 28일


키워드 대한제국, 식민지, 태환화폐, 금본위제도, 은본위제도, 환율, 중앙은행, 한국은행, 조선은행, 연준, 통화스와프, 대공황, 루스벨트, 이승만,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이토 히로부미, 아서 블룸버그


▣ 출판사 서평
지금 왜 ‘중앙은행’인가?
2016년 상반기 경제 뉴스의 화두는 단연 정부와 한국은행의 ‘한국형 양적완화’ 시행 여부였다. 정부는 줄기차게 한국은행에 윤전기를 돌릴 것을 요구했고, 한국은행은 이에 묵묵부답 혹은 제한된 답변으로 맞섰다. 여기에는 한국은행법에 따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한국은행의 판단이 있었다. 결국 대승적 차원에서 한국은행이 ‘국책은행 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해 조선·해운 부실 3사에 대한 구조조정 추진금 10조 가량을 대출해주기로 결정했지만,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 침해’라는 화두가 언론을 통해 대두되었다. 연이어 한국은행은 2016년 6월 9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 금리 0.25퍼센트포인트 인하를 단행했다. 이 또한 중앙은행의 금리 결정이 가지는 의미와 그 여파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나라 경제에 큰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중앙은행의 존재와 그 막대한 역할을 느낀다. 이어서 우리는 과연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정립된 것이며, 중앙은행이 ‘금리 결정권’을 가지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지 묻게 된다. 이는 중앙은행의 본질적 역할에 대한 의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학술 논문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중앙은행의 역사와 그 역할을 쉽게 설명한 책을 시중에서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 점에서 현직 한은맨 차현진의 『중앙은행 별곡』 발간은 마른 땅에 내린 단비와 같다. 이 책은 독자들의 그런 의문을 풀어줄 유일한 대안이다.


‘현직 한은맨’이 쓴 사람 냄새 나는 금융사
금융은 차갑고 딱딱하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그러나 『중앙은행 별곡』에서는 인간의 온기와 체취가 흐른다. 금융은 인간사의 한 단면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수년 전부터 인문학적 관점에서 금융을 다뤄온 차현진이 이번에 도전한 것은 한국은행의 뿌리인 조선은행의 출생의 비밀이다.
중앙은행사라고 하면 한 기관의 사사(社史)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한제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 만주국, 미국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가 뒤얽혀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작은 시냇물 같았던 이야기가 어느덧 20세기 한국사와 세계사를 관통하는 강줄기로 변한다. 저자는 마치 「여는 글」에서 자신이 귀감으로 삼는다고 말한 영국의 역사학자 존 클래펌(John Clapham)의 뒤를 잇는 듯하다. 클래펌은 영란은행(영국의 중앙은행)의 역사를 영국사 연구의 중요한 봉우리로 격상시켰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 자료를 파고 든 저자의 충실한 연구 덕에, 이 책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예를 들면, 한일 강제병합 직전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조선통감이 가쓰라 다로(桂太郎) 일본 수상과 알력을 빚으며 세운 것이 대한제국의 중앙은행인 구(舊)한국은행이라는 사실, 이토가 가쓰라의 동양척식회사 설립계획에 반대하여 중앙은행 설립을 주장했다는 사실이 그렇다. 또 다른 예로는 조선은행 직원이었던 구용서의 일생을 들 수 있다. 그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던 구연수의 아들로, 아버지 때문에 신입 직원 중 유일한 조선인이자 무시험 합격생으로 조선은행에 들어간 뒤 일본에서 안온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금융 전문가라는 이유로 한국은행 초대 총재의 영예를 안았다. 이것은 한국은행 전·현직 직원들도 몰랐던 비화들이다.


최초의 대한민국 중앙은행사
『중앙은행 별곡』은 조선은행과 한국은행에 관해 지금까지 발표되었던 다른 책들과는 완전히 차별된다. 전작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 오디세이』에서 보여줬듯, 저자는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소설·시·연극·영화 분야의 고전을 이야기 중에 능란하게 동원한다. 이런 장치는 경제적 시점만을 동원한 금융사를 넘어 금융사 또한 세계 역사의 큰 일부라는 점을 독자에게 일깨워준다. 이는 저자의 관심 분야의 폭넓음과 그 지식을 분별 있게 다루는 재주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야기의 짜임새도 독특하다. 조선·일본·만주가 하나로 엮여 돌아가던 식민지 치하의 동북아 이야기를 간명하게 다루어, 독자가 3국의 금융과 화폐제도의 진화 과정을 마치 손바닥을 보는 것처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글의 관점 또한 독보적이다. 조선은행과 한국은행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기록으로는, 각종 일간지 기고문이나 단행본 등 다양한 자료가 있지만, 이런 회고담은 1인칭 시점으로 쓰인 것들이다. 1인칭 시점은 침묵과 과장의 위험이 따르고 반성과 교훈을 찾기 어렵다. 3인칭 관점에서 정리된 실록(實錄)들은 비교적 정확하고 메시지도 있지만, 사건을 나열하기 바빠서 필연성과 재미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에 비해 『중앙은행 별곡』은 현직 한국은행 직원이 당사자인 선배들을 면담한 뒤, 이를 바탕으로 각종 기록과 상호 대조하면서 집필했다. 그래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조명했기 때문에 인과관계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 책은 우리나라 중앙은행의 역사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서술한 최초의 책이다.


대한민국의 금융 발전 과정을 다룬 경제 교양서
이 책은 「중앙은행 오디세이」라는 이름으로, 저자가 2014년 9월부터 『중앙SUNDAY』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사진 자료와 도표, 금융사 연표, 찾아보기를 확충해서, 독자로 하여금 세계 금융사의 시점에서 대한민국 중앙은행의 발달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경제학도들에게는 우리나라 금융의 발전 과정을 가장 빠르고 쉽게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교재가 되었고, 경제와 금융에 관심을 가진 일반 독자에게는 동북아 금융사와 대한민국 중앙은행사를 일거에 파악할 수 있는 고급 경제 교양서로 거듭났다.
『중앙SUNDAY』 연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앙은행 별곡』에서는 저자가 ‘혼돈의 시대’라고 규정한 시기인 1897년 대한제국의 선포에서 1950년 한국은행 설립까지를 다루었다. 이에 이어지는 시기인 한국전쟁부터 IMF 외환위기까지의 이야기는, 또 한 권의 책으로 엮여져 나올 예정이다.


▣ 차례
여는 글

1 19세기 초까지는 금리 동결이 중앙은행의 미덕
2 위폐 사건을 계기로 반공 사회가 된 한국
3 만물박사 다산 정약용도 ‘중앙은행’은 몰랐다
4 ‘돈이 모이는 곳’인가, ‘돈을 바꾸는 곳’인가
5 민간이냐 정부냐 아니면 괴물이냐
6 조선 궁터에 세워진 대한제국 중앙은행의 숙명
7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 노릇한 조선은행
8 중앙은행끼리 원조교제, 최선인가 탈선인가
9 일본 정부에 순종하다가 수렁에 빠지다
10 개인의 머리에서 나왔나, 정부가 법률로 만들었나
11 일제강점기에도 치열했던 금융감독 밥그릇 싸움
12 금융위기 잉태한 일본 제국주의의 후진 정치
13 ‘야만의 유산’인가, ‘자유무역 확산’의 기수인가
14 껍데기만 남은 조선은 금본위제도의 변방이자 이단아
15 조선은행법은 식민지 모순구조의 거울
16 금본위제 고수하던 일 대장상, 우익 청년에게 살해되다
17 ‘일본-조선-만주’는 ‘중심부-반주변부-주변부’ 서열 구조
18 일선만 블록, 일만 블록으로 대체되다
19 미국, 은값 조작으로 동북아를 뒤흔들다
20 식민지 중앙은행 간 통화스와프로 전비 조달한 일본
21 지속 불가능한 전쟁의 결말은 초인플레이션
22 과로와 풍토병에 시달린 조선은행 임직원
23 조선인에게 조선은행은 선망과 좌절의 일터
24 소련군을 피해 남쪽으로 간 북조선의 인재
25 미 군정 업고 금융계 실세가 된 김진형
26 등거리 외교를 통해 존재감 키운 조선은행
27 자주권 확보를 위한 대통령의 결심
28 중앙은행 제도 수입에 의기투합한 미국 박사 삼총사
29 재무장관-연준 의장의 냉전이 만든 우정
30 관료 몫이던 통화정책 결정권이 금통위로 가다
31 힘들게 세상에 나왔으나 생일을 잊은 한국은행


참고문헌
금융사 연표
찾아보기


▣ 본문 중에서
당시 신탁통치 찬반 문제는 지식인들끼리의 관념적인 문제였던 반면, 위조지폐 문제는 전 국민을 금방 빨아들여 흥분시키는, 무섭도록 폭발적인 문제였다. 은행에서 100원짜리 지폐 수취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가운데 공산당은 불법 단체로 낙인찍혔다. 주범 박낙종과 이관술은 종신형에 처해지고(한국전쟁 중 처형), 조선공산당 당수 박헌영은 북으로 도망갔다. 『해방일보』는 매각되어 오늘날 『경향신문』으로 전환되었다. 이것이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전말이다. 해방 직후 순진했던 남조선은 소공동 74번지(오늘날 조선호텔 앞) 지하에서 벌어진 위조지폐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반공 사회가 되었다. 돈의 타락은 자본주의를 붕괴시키지만, 그 실패는 공산주의를 추방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돈의 ‘짝퉁’은 그 어떤 ‘짝퉁’보다도 위태롭다. 원래 ‘돈의 타락’은 위조지폐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레닌이 말한 돈의 타락이란, 진짜 돈의 범람이었다. 레닌은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면 자본주의가 붕괴된다고 믿었다. 즉, 무능한 중앙은행에 의한 화폐 남발이 화폐 불신을 초래해서 자본주의의 씨앗인 화폐를 사라지게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2 위폐 사건을 계기로 반공 사회가 된 한국」, 33~34쪽)


중국인들은 금융기관을 ‘전장錢莊’ 즉, ‘ 돈錢이 모인莊 곳’이라고 불렀고, 일본인들은 ‘료가에兩替’ 즉, ‘돈兩을바꾸는替곳’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국내금융(여수신)에, 일본은 국제금융(환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것이 중국과 일본의 차이였다. 차이는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짱께’들은 회표會票를 발행하고, 조선의 개성상인들은 어음於音을 발행했다. 중국, 조선 모두 개체로서 금융기관과 결제 수단은 발달했으나, 시스템을 보는 눈은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미국의 은행법을 보자마자 ‘bank’를 ‘은행(집합체)’이라고 번역했다. bank를 집합명사로 번역한 것은, 동업자들이 서로 얽혀 망網을 이룬 채 어음과 수표를 교환하는 지급결제 업무가 은행업의 핵심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일찍이 ‘료가에’들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해석이었다. 그렇다. 동업자 간 네트워크야말로 은행산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 네트워크가 없었을 때는 직접 돈을 운반하는 수밖에 없었다(송금-배달-결제). 이제 막 시작된 한국의 ‘카톡 결제’와 중국의 ‘알리페이’도 은행 네트워크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들의 서비스는 은행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 네트워크에 기생하는 것에 가깝다. 오늘날 은행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중앙은행이 있다. 은행을 상대로 지급준비금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지급결제망이 없다면, 정부의 세수와 재정지출도 아주 불편해진다. 그런 점에서 중앙은행의 지급결제망은 국가경제의 중추신경이다. 미국은 중앙은행 없이 연방정부가 홀로 국고금을 관리하다가 1914년 연준 설립과 더불어 야만상태를 벗어났다. 처음에 미국을 모방했던 일본은 그 점에서는 미국보다 빨랐다.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경제 전체를 엮는, 지급결제망의 큰 모습을 32년 먼저 완성한 것이다.
(「4 ‘돈이 모이는 곳’인가‘돈을 바꾸는 곳’인가」, 53~55쪽)


일본은 국가총동원 체제 유지를 위해 국적 선택이나 포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센징’은 어디에 있건 내선일체의 원칙이 적용되고 징병의 대상이 되었다. 안수길의 소설 『북간도』에는 중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끼어 변발흑복과 창씨개명을 동시에 강요받는 1등 국민이자 ‘3등 국민’들의 애달픈 삶이 그려진다. 조선족의 또 다른 별명은 ‘가오리방쯔高麗棒子’였다. ‘방쯔’는 거지라는 뜻이다. 20세기 초 만주로 간 조선인들은 사실 거지꼴이었다. 몸뚱이밖에 없던 여자들 중에는 성매매로 빠지는 일도 많았다(다른 민족에 비해 매춘 인구 비율이 높았다). 하지만 성병 감염률이 낮다고 알려져서 몸값은 비쌌다. 『동아일보』편집국장이던 춘원 이광수는 현지 조사를 마친 뒤 “중국인보다 청결한 조선 여자들은 인육 장사(성매매)에서도 환영을 받는다”며 기쁜 듯이 기록했다. 남자들도 비슷했다. 초기에는 거의 대부분 농사에 매달렸고, 일부는 중국인 밑에서 소작농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악착같은 생활력을 발휘해 곧 형편이 나아졌다. 부농 출신인 시인 윤동주 집안이 그랬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상업과 운수업에서도 놀라운 약진을 보였다.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화교들처럼 재력을 바탕으로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의 똑똑한 젊은이들은, 일본 주류 사회에서 만주 인맥의 부상과 만주 동포들의 성공 사례를 보고 만주행을 결심했다. 그들 중에는 의사, 변호사, 교사뿐만 아니라 행정관료(최규하·강영훈)나 장교(박정희·정일권·백선엽)를 꿈꾸는 사람도 있었다. 비좁은 조선을 벗어나 광활한 만주를 향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꿈은 호연지기였으나, 체제에 순응했다는 점에서는 지극히 소시민적이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누구보다도 혁혁한 공로를 세운 그들이 소시민적이었다는 사실은, 암울한 시대가 만든 역설이다. 선계 일본인들이 1등 국민인 동시에 3등 국민이었던 것처럼.
(「18 일선만 블록, 일만 블록으로 대체되다」, 193~195쪽)


6월 5일 대통령은 한은법에 따라 총재, 금통위원과 대리위원들을 임명했다. 대부분은 조선은행과 인연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대리위원 김교철(훗날 조흥은행장)은 아들 김정렴(재무장관)과 함께 2대가 조선은행과 한국은행에 근무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조선은행은 커녕 금융업 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문가도 있었다. 윤보선(제4대 대통령)이 그랬다. 윤보선은 상공장관직이 힘들다고 사퇴한 뒤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낙선했다. 6촌 형님인 윤영선 농림장관이 마침 쉬고 있는 그를 금통위원으로 추천했다. 이승만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윤보선은 끈기가 없어서 그것도 얼마 못할 것”이라면서도 그를 임명했다. 과연 윤보선은 6개월 뒤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옮겼다. 윤보선도 처음에는 의욕적이었다. 금통위원으로 임명된 6월 5일 오후 회의에 출석해, 한국은행의 정관과 직제를 승인했다. 다음 날에는 재무부가 15억 원의 자본금과 3억 원의 적립금을 납입했다. 이로써 한국은행이 설립되었지만, 한국은행 직원들은 자본금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금통위 회의가 이미 세 차례나 개최된 뒤인 6월 12일, 해군 군악대를 불러 창립 기념 파티를 열었다. 그러나 6월 12일은 조선은행 직원들이 중앙은행 직원으로 신분을 세탁한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명함을 바꾼 ‘그들만의 잔칫날’에 불과했다. 법률적 의미가 더 큰 6월 6일이 잊힌 것은, 재무부와 심리적 거리감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재무부에서 은행감독 권한을 흡수하는 데도 인적 교류나 조직 흡수를 고려하지 않았다. 새로운 법률에 따라 생기는 새 일자리는 그들이 독식하겠다는 태도였다.
(「31 힘들게 세상에 나왔으나 생일을 잊은 한국은행」, 324~326쪽)


▣ 지은이 소개 __ 차현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 경제학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Wharton School에서 경영학(재무이론)을 공부했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면서 워싱턴사무소장, 기획협력국장, 커뮤니케이션국장, 인재개발원장을 역임했다. 이밖에 대통령비서실 행정관, 미주개발은행IDB 컨설턴트로 일한 경험도 있다. 저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은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한국은행이 콜금리 대신 RP금리를 정책금리로 채택하는 데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금융위기 직후에는 한국은행법 개정 작업에 참여해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중앙은행관觀은 뚜렷하고 독특하다. 최종대부자 기능이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라고 주장(『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2007년)하며, 정부와 중앙은행은 양경반조兩鏡返照의 관계라고 생각한다(『머니맨』, 2008년). 마주한 거울에 비친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기성찰의 깊이를 더해가야 한다는 의미다. 저자는 금융이외에 인식론, 역사,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중앙은행별곡』은 저자의 중앙은행 철학과 자의식이 드러난 여섯 번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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