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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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선 사회
-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4


지은이 강준만 | 쪽수 368쪽 | 판형 152×225(신국판)
값 15,000원 | 분야 인문사회 > 사회학
ISBN 978-89-5906-354-3 03300 | 출간일 2015년 7월 31일


키워드 : 메라비언의 법칙, 유추의 오류, 앨저 콤플렉스, 아도니스 콤플렉스, 거대건축 콤플렉스, 마천루 콤플렉스, 가면 증후군, 뮌하우젠 증후군, 리셋 증후군, 빈 둥지 신드롬, 피터팬 신드롬, 감성 지능, 고정관념의 위협,
지위 불안, 붉은 여왕 이론, 디지털 세렌디피티, 작은 수의 법칙, 게이 지수, 약한 연결의 힘, 파레토의 법칙, 지프의 법칙, 롱테일 법칙, 배양효과 이론, 음모론, 하인리히 법칙, 재난의 축복



▣ 출판사 서평



왜 ‘독선적인 사람’의 똑똑함은 독약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대체적으로 나라가 잘되기 위해서는 국민이 똑똑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국민이 똑똑해진다고 해서 나라가 반드시 잘되는 것일까? 혹시 ‘똑똑해진 사람들’이 자신의 똑똑함을 과신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생각은 무시하고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는 독선에 빠질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독선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아무리 똑똑해도 ‘싸가지 없는 인간’이라며 상종하길 꺼린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를 대할 땐 특정 당파 집단의 일원이 되거나 익명성을 얻는 순간 전혀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어떤 이념이나 당파성의 옹호자가 되면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경멸감이나 적대감을 드러낸다. 그런 토양에서 정치인이나 논객의 인기는 반대편을 조롱하거나 아프게 만드는 언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언론은 “이게 웬 떡이냐” 하는 자세로 그런 증오의 언어를 미주알고주알 열심히 보도하는 ‘증오 상업주의’에 탐닉한다. 지지자들의 환호와 언론의 관심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논쟁이란 상처를 주고받는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젠가 고종석이 잘 지적했듯이, 그런 게임에선 아픔을 느끼는 능력이 가장 모자란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독선은 이성일까? 아니다. 감성이다. 독선적인 사람의 똑똑함은 독약이 될 수 있다. 소통과 타협과 화합을 원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성은 감성의 노예”라고 했는데, 이 말은 갈등이라는 밥을 먹고사는 정치에선 진리에 가깝다. 감성의 지배를 받는 이성의 용량을 아무리 키워봐야 나라가 똑똑해지는 데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왜 한국은 ‘독선 사회’가 되었는가?


거시적으로 보자면, ‘독선 사회’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 특유의 사회문화적 동질성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라는 데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을 박해하면서 획일성을 예찬해왔기 때문에 전 국민이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잘 살아보세”라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압축성장이 가능했다.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다양했다면, 우리가 그렇게 미친 듯이 일하고 공부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다름’의 불인정은 물질이 아닌 정신 영역에서는 재앙을 몰고 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생각과 소통하고 타협하면서 화합하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
물론 독재자들의 독선만이 독야청청했던 독재정권 때문이다. 폭력적 독선에 대항하는 길은 신념적 독선 이외엔 없었다. “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은 사실상 “일방적으로 당하면서 독선을 강요당했다”는 걸 표현한 것이지만, 한 번 형성된 체질은 세상이 바뀌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온갖 갈등과 분란과 이전투구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 후유증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세월이 해결해주겠지만, 그렇게 넋 놓고 기다리다간 나라가 망할지도 모르니, 우리는 소통과 타협과 화합을 모색하기 위해 애를 써야만 한다. 우리의 진정한 적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독선이다.


왜 ‘순수’와 ‘정치’의 만남은 문제가 되는가?


독선이 가장 문제가 되는 영역은 정치다. 왜 그런가? 순수주의자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처럼 대하기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적 강경파로 활약하기 마련이다. 어느 집단에서건 이런 강경파는 소수이지만 지배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강점은 뜨거운 정열과 헌신이기 때문이다. 순수는 독선과 동전의 양면 관계를 이룬다. 순수주의자들은 자신의 순수를 무기와 명분으로 삼아 정쟁을 종교 전쟁으로 몰고 간다. 정치를 혐오하고 저주하는 유권자들은 그런 명쾌한 접근법에 환호한다. 대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에 등을 돌린 가운데 그런 소수의 전사들은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정치권 역시 그런 ‘시장 논리’에 굴복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10대 0’의 정치다.
여야 싸움에서건 같은 당내 싸움에서건,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당성을 10, 상대편의 정당성을 0이라고 주장하는 고질병을 앓고 있다. 진실은 7대 3이거나 6대 4이거나 5대 5일 텐데도 언행은 ‘10대 0’에 근거한 과장과 과격과 극단을 치닫는다. 그래야 열성 지지자들의 피를 끓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 또는 그렇게 해온 체질 때문이겠지만, 이게 나중엔 부메랑이 되어 타협의 발목을 잡는다. 양쪽 진영 모두에서 타협을 야합이라고 욕해대니 죽으나 사나 출구가 없는 격돌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순수와 정치가 만나면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날이 갈수록 우리 언론의 당파성은 심화되고 있다. 날이 갈수록 분열로 온 사회가 찢어지는 ‘사이버발칸화(cyber-balkanization)’는 극단을 치닫고 있다. 상대편을 향해 서로 독선적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대지만, 피차 역지사지를 하지 않는 독선 공방 속에서 모든 건 권력 쟁탈의 의지로 환원되고 있을 뿐이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


이 책은 강준만 교수가 『감정 독재: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2013),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2』(2014), 『생각의 문법: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3』(2015)에 이어 내놓는 ‘세상을 꿰뚫는 50가지 이론’ 시리즈의 4번째에 해당한다. 강준만 교수의 메시지의 한결같다. “자신의 확신을 의심하라!”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우리 인간이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적·습관적 판단에 얼마나 취약하고 허약한가 하는 걸 잘 말해준다. 즉, 우리가 독선을 범해선 안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닫자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이 마비되니, 정치 아닌 다른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한계와 모자람을 인정하자고 꼬드기는 것이다. 그런 우회적 설득 시도를 정치에 접목시킨다면,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의 개혁과 사회적 진보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똑똑해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똑똑함과 확신의 한계를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정치 세력을 쓰레기로 매도하면서 면책 심리를 키우고 반대 세력을 악마화하는 ‘증오 마케팅’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버릇을 버리는 게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또 정치적 판단을 할 때 인간의 뇌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 영역이 작동한다는 걸 인정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소통과 타협과 화합의 길로 갈 수 있게끔 노력해보자.



▣ 차례


머리말 왜 우리는 독선에 중독되었는가? _ 005


제1장 언어의 신비와 함정
01 왜 우리는 ‘왜냐하면’에 쉽게 넘어가는가? 왜냐하면 효과 _025
02 왜 매년 15만 명이 자신의 이름을 바꾸는가? 이름 효과 _031
03 왜 우리는 대화를 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착각하는가? 메라비언의 법칙 _037
04 왜 페미니스트는 일부 남성의 적이 되었는가? 본질주의 _042
05 왜 날이 갈수록 ‘~처럼’이라고 말하는 게 위험해지나? 유추의 오류 _047


제2장 콤플렉스의 독재
06 왜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 신화를 포기하지 않는가? 앨저 콤플렉스 _055
07 왜 근육질 몸매를 과시하는 식스팩 열풍이 부는가? 아도니스 콤플렉스 _061
08 왜 인간은 몸을 길게 보이려고 애를 쓰는 동물과 다를 바 없나? 하이티즘 _067
09 왜 정치인들은 대형 건축물에 집착하는가? 거대건축 콤플렉스 _073
10 왜 세계적인 마천루는 아시아·중동 지역에 몰려 있나? 마천루 콤플렉스 _079


제3장 증후군 또는 신드롬
11 왜 여배우 엠마 왓슨은 자신을 사기꾼처럼 여기는가? 가면 증후군 _087
12 왜 사이버공간은 관심을 받기 위한 아수라장이 되었나? 뮌하우젠 증후군 _092
13 왜 한국 정치는 ‘리셋 버튼’ 누르기에 중독되었는가? 리셋 증후군 _097
14 왜 한국의 가족주의를 ‘파시즘’이라고 하는가? 빈 둥지 신드롬 _103
15 왜 우리는 ‘자신 속의 아이’에 빠져드는가? 피터팬 신드롬 _109


제4장 지능과 고정관념
16 왜 인간의 평균 IQ는 30년 만에 20점이나 올랐는가? 플린 효과 _117
17 왜 인간을 한 가지 지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가? 다중 지능 _122
18 왜 무식한 대통령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가? 감성 지능 _129
19 왜 고정관념에 세금을 물려야 하는가? 고정관념 _135
20 왜 지능의 유연성을 믿으면 학업성적이 올라가는가? 고정관념의 위협 _141


제5장 능력과 경쟁
21 왜 ‘능력주의’는 불공정하며 불가능한가? 능력주의 _149
22 왜 경쟁은 우리의 종교가 되었는가? 초경쟁 _154
23 왜 성공한 사람들이 자살을 할까? 지위 불안 _161
24 왜 기업과 정치는 피 튀기는 싸움에만 몰두하는가? 블루오션 _167
25 왜 한국 TV드라마는 방송 당일까지 촬영하고 방송 직전까지 편집할까? 붉은 여왕 이론 _173


제6장 우연과 확률
26 왜 우연은 준비된 자에게만 미소 짓는가? 세렌디피티 _181
27 왜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이 누군가에겐 악몽이 될 수도 있나? 디지털 세렌디피티 _186
28 왜 마이클 조던은 흑인 청소년들에게 해악을 끼쳤는가? 기저율 무시 _193
29 왜 동전을 6번 던지면서 앞뒤가 반반씩 나오길 기대하나? 작은 수의 법칙 _199
30 왜 우리는 집단의 특성으로 개인을 평가하는가? 통계적 차별 _205


제7장 공동체와 다양성
31 왜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역의 투표율은 하락하는가? 사회적 자본 _213
32 왜 동성애자가 많은 지역에서 첨단산업이 꽃을 피우는가? 게이 지수 _219
33 왜 독일은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는가? 필수적 다양성의 법칙 _225
34 왜 친구가 해준 소개팅은 번번이 실패할까? 약한 연결의 힘 _230
35 왜 ‘최고 이의 제기자’가 필요한가? 악마의 변호인 _237


제8장 소수와 다수
36 왜 세상은 자꾸 ‘20대 80의 사회’로 가는가? 파레토의 법칙 _243
37 왜 1,000개의 단어만 알아도 75퍼센트의 일상대화를 이해할 수 있나? 지프의 법칙 _249
38 왜 어떤 기업들은 소비자를 일부러 쫓아내려고 애쓰는가? 디마케팅 _255
39 왜 1퍼센트의 사람들이 전체 조직을 뒤흔들 수 있는가? 1퍼센트 법칙 _260
40 왜 꼬리가 머리 못지않게 중요해졌을까? 롱테일 법칙 _267


제9장 공포·분노·충동
41 왜 결정을 내리는 걸 두려워하는가? 결정공포증 _275
42 왜 ‘마녀사냥’이 일어나는가? 도덕적 공황 _280
43 왜 폭력의 공포에 떠는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보수화되는가? 배양효과 이론 _287
44 왜 미국 정부가 9·11 테러를 공모했다고 믿는가? 음모론 _294
45 왜 양극화 해소를 더이상 미루어선 안 되는가? 야성적 충동 _301


제10장 위험과 재난
46 왜 작은 변화가 예측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낳는가? 나비효과 _311
47 왜 극단적인 0.1퍼센트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꾸는가? 블랙 스완 이론 _317
48 왜 우리는 재앙의 수많은 징후와 경고를 무시하는가? 하인리히 법칙 _323
49 왜 사고는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는가? 정상 사고 _331
50 왜 재난은 때로 축복일 수 있는가? 재난의 축복 _337



▣ 본문 중에서


사실 ‘메라비언의 법칙’은 굳이 법칙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미 우리가 평소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잘 아는 사람이건 잘 모르는 사람이건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 우리는 상대방의 언어보다는 표정과 음성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읽어낸다. 특히 갈등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표정과 음성으론 닫혀 있음에도 입으로만 뭐든지 툭 터놓고 이야기하자고 해보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미 그걸 감지한 상대방은 결코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을 게 뻔하다. 진짜 소통은 말 이전에 표정과 음성으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의할 게 있다. ‘법칙’이라고 하는 건 뜻밖의 사실을 알리기 위한 수사적 장치일 뿐, ‘메라비언의 법칙’이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되는 건 아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속마음은 따로 갖고 있으면서 상대와 대화를 하고 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착각하는 우리의 버릇에 경종을 울리는 데엔 아주 좋은 이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 우리는 대화를 하면 상황이 나아질 거라고 착각하는가?」, 본문 41쪽)


현실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이야기였지만, 미국인들은 앨저의 소설에 열광했다. 이는 통나무집에서 자란 가난한 아이가 대통령이 된다는 전통(a log-cabin-to-White-House tradition)과 더불어 늘 미국인들을 매료시키는 신화였다. 그 신화는 오늘날에도 건재하다. 앨저는 소설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의인화하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 신화가 살아 있는 한 앨저라는 이름은 계속 미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게 분명하다. 캐나다 출신의 미국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Laurence J. Peter, 1919~1990)는 앨저가 “하면 된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물의 성공 스토리를 창작해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노력의 유용함을 과장하는 심리 상태가 미국인들에게 만연되어 있다며, 이를 가리켜 ‘앨저 콤플렉스(Alger complex)’라고 했다. 앨저 콤플렉스는 앨저 신화와 아메리칸 드림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왜 우리는 ‘개천에서 난 용’ 신화를 포기하지 않는가?」, 본문 58~59쪽)


자신을 팔기 위해 남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관심 경제’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광고·홍보·PR은 전통적인 주목 산업이지만, 이젠 전 산업의 ‘관심 산업화’로 나아가고 있다. 사실 사이버공간은 관심과 주목 쟁취를 위한 아수라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듯 ‘관심 경제’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남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너무도 열악한 사람들이 빠져드는 뮌하우젠 증후군이 의미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남의 관심을 받기 위해 애를 쓰더라도 정도껏 해야 한다는 걸까? 데이비드 즈와이그(David Zweig)의 『인비저블: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Invisibles: The Power of AnonymousWork in an Age of Relentless Self-Promotion)』(2014)은 그런 ‘관심 경제’의 문법에 정면 도전하는 책이라서 흥미롭다. 그는 “타인의 인정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평가가 실제 가치보다 훨씬 과장되어 있다”며 이렇게 묻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 물어보라. 당신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러닝머신 위에서 뛰며 남들과 경쟁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에게 도전해 영원한 보상을 얻을 것인가.” 이 물음은 뮌하우젠 증후군 환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깊이 생각해볼 만한 게 아닐까? (「왜 사이버공간은 관심을 받기 위한 아수라장이 되었나?」, 본문 96쪽)


우리 현실에서 하루아침에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는 교육 방식을 도입하는 것은 어렵다. 교육은 단순히 기술적 방법론의 문제를 넘어서 한 사회의 가치관과 더불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습속(習俗)의 통제를 벗어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한 가지 지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각자의 개성과 비교 우위를 가진 능력을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건 큰 무리 없이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승자(勝者)와 패자(敗者)를 갈라 아이들의 계발되지 않은 잠재력을 훼손하는 건 개인의 비극인 동시에 사회적 비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인간을 한 가지 지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가?」, 본문 127쪽)


이렇듯 능력주의 사회는 실현되기도 어렵지만, 설사 실현된다 해도 문제다.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를 사회적 이동성의 문제로 둔갑시켜버리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사회에선 부자나 빈자 모두에게 자기정당화 효과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 부자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할 것이고, 빈자도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빈자가 되었다고 할 게 아닌가 말이다. 바꿔 말해서 능력주의 사회는 빈부격차에 가장 둔감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왜 ‘능력주의’는 불공정하며 불가능한가?」, 본문 153쪽)


겨우 한 자릿수 신뢰도를 갖고 있는 권력기관, 10퍼센트대의 신뢰도를 갖고 있는 언론과 종교, 20퍼센트대의 상호 신뢰도를 갖고 있는 국민,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민낯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른 걸까? 모든 걸 다 제쳐놓고 신뢰를 만들고 구축하는 것을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로 여겨야 하는 게 아닐까? 사회적 자본을 형성하기 위해 애쓰는 ‘사회적 자본가(social capitalists)’의 출현과 활약이 요구되는 세상이 되었다. (「왜 대형마트가 들어선 지역의 투표율은 하락하는가?」 , 본문 218쪽)


좌우를 막론하고 정치에서 소통을 어렵게 만드는 건 늘 순수주의자들(purists)이다. 이들은 가능성을 추구하는 정치를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처럼 대하기 때문에 타협을 거부하는 강경파로 활약하기 마련이다. 어느 집단에서건 이런 강경파는 소수임에도 지배력을 행사한다. 강경파와 강경파 지지자들의 강점은 뜨거운 정열이기 때문이다. 일반 유권자들에게는 선거일에 투표만 하는 것도 정치 참여지만, 그건 가장 낮은 단계의 참여다. 생업을 잠시 중단해가면서까지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에 자금을 지원하고, 모든 정치 관련 집회나 시위에 열심히 뛰어드는지를 생각해보자. 이런 높은 단계의 참여를 하는 이들은 ‘일당백’이다. 한 사람이 겨우 투표나 하는 유권자 100명 아니 그 이상의 몫을 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머릿수로 따질 일이 아니다. 정당, 지지자 모임 등 어느 조직에서건 강경파가 머릿수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다. (「왜 1퍼센트의 사람들이 전체 조직을 뒤흔들 수 있는가?」, 본문 262~263쪽)


일부 서양 학자들은 도덕적 공황이 더는 단발적 현상이 아니라 근대사회 일상생활의 만성적 특성이 되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에선 도덕적 공황이 오래전부터 만성적 현상이었다. 한국 특유의 ‘미디어 1극 구조’ 때문이다.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이 지구상에 한국처럼 미디어가 한 거대 도시에 집중되어 있는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다양성은 실종된 가운데 모든 미디어가 특정 이슈에 경쟁적으로 ‘올인’하는 경향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 어떤 주제건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 만한 이슈라면 도덕적 공황을 만들어내고야 만다. 한 도시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미디어는 어떤 이슈가 떠오르면 살인적인 경쟁을 벌이면서 무작정 쓰고 보자는 식으로 최소한의 사실 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선정적으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하이에나 저널리즘’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그걸 언론 윤리의 문제만으론 보기 어렵다. ‘미디어 1극 구조’라는 환경과 조건이 훨씬 더 큰 이유다. 그 구조를 그대로 두는 한 자주 발생하는 도덕적 공황은 우리의 숙명이다. (「왜 ‘마녀사냥’이 일어나는가?」, 본문 284~285쪽)


한 해 5,000여 명에 달하는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1,200여 명이 화물차 사고에 의한 것이고, 고속도로 화물차 사고 사망의 38퍼센트가 과적과 적재불량에 의한 것이라는 통계도 있건만, 과적을 해야 하고 그래서 사고 위험을 안고 달릴 수밖에 없는 ‘도로 위의 세월호’는 기업과 관(官)에 의해 장려되고 있는 셈이 아닌가. 말로만 안전을 요구하기는 쉽지만, 안전엔 적잖은 비용이 들어간다. 과연 우리에겐 그 비용을 부담할 뜻이 있는가? 안전을 위해 희생해야 할 속도도 감내할 수 있는가?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해보면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분노해도 분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왜 우리는 재앙의 수많은 징후와 경고를 무시하는가?」, 본문 330쪽)



▣ 지은이 소개 __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11년에는 세간에 떠돌던 ‘강남 좌파’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냈고, 2012년에는 ‘증오의 종언’을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안철수 현상’을 추적했다. 2013년에는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를 화두로 던졌고, 2014년에는 ‘싸가지 없는 진보’ 논쟁을 촉발시키며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생각의 문법』, 『인문학은 언어에서 태어났다』, 『싸가지 없는 진보』, 『미국은 드라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 『한국인과 영어』, 『감정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교양영어사전』(전2권), 『멘토의 시대』, 『자동차와 민주주의』, 『아이비리그의 빛과 그늘』, 『강남 좌파』, 『룸살롱 공화국』, 『특별한 나라 대한민국』, 『전화의 역사』, 『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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