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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1 - 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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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 1
〈고조선〉


지은이 이종호 | 쪽수 184쪽 | 판형 135×205
값 12,000원 | 분야 역사 > 문화 / 역사기행
ISBN 978-89-91945-81-4 04910 | 978-89-91945-83-8(세트)
출간일 2015년 10월 23일


키워드 고조선, 샤자뎬, 청쯔산, 싼쭤뎬, 다뎬쯔, 얼다오징쯔, 인쉬, 평양성, 백악산 아사달, 장당경, 낙랑, 기자조선, 위만조선, 고죽국, 고인돌, 험독, 제스산, 훙산문화, 기자국, 이우뤼산


고조선은 건국 연대, 도읍지 위치, 사회, 정치 등 많은 점이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인지에 대한 결론도 도출되지 못한 상태다. 이 책에서는 우선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네 곳의 중심지를 찾아, 그곳에 깃든 단군조선의 흔적을 톺아본다. 그 뒤로는 동이족이 중국 중원에 건설한 인쉬를 포함, 단군조선의 중심지로 비정된 샤자뎬 하층문화의 중요 유적을 돌아본다. 마지막으로는 고조선 후대의 영역을 답사한다. 고조선 후대에 등장하는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터전을 찾는 일은 비교적 수월하다. 더불어 고조선의 유물이 분명한 고인돌, 순장무덤 등의 유적도 답사 대상이다. 책의 설명과 함께 유적을 따라가다 보면 막연했던 고조선의 실체가 손에 잡히듯 다가올 것이다.


샤자뎬 유적: 청동기 유물의 보고샤자뎬夏家店 문화 유적이 분포하는 지역은 옌산산 산지로 북으로는 시라무룬강에 이르고 동쪽으로는 이우뤼산 기슭, 서쪽으로는 허베이성 장자커우 지구에 이른다. 아오한기 지역에서 발견되는 샤자뎬 하층문화 유지는 2,300여 곳이나 된다. 현재는 샤자뎬 상층문화가 표토로 노출되어 있으며 주민의 무덤이 간간히 보인다. 샤자뎬 유지는 방대하지만 30분 정도만 공을 들이면 빗살무늬토기, 삼족토기의 다리, 타제석기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청쯔산 산성: 고대의 소도
청쓰산城子山 산성을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외성 주위에서 한민족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반원형 마면식 치雉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할석을 한 면만 다듬어 삼각형으로 쌓고, 다음 것은 역삼각형으로 쌓은 성벽의 축조 방식은 고구려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하늘신과 조상신에 제사를 지내는 용도로 돌로 쌓아 만든 제단 터와 사람들이 머무르거나 공무를 보았을 대형 건물 터도 발견되는데, 원형 제단 터에서는 원시 솟대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선돌이 발견되어, 이곳이 원시 소도였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청쓰산 산성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표지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국가가 성립될 요건이 모두 충족되었다.”


싼쭤뎬 유적: 석성에서 보이는 조상의 얼
싼쭤뎬三座店 유적의 전체 면적은 1만 4,000제곱미터나 된다. 건물 터 수십 기와 석축 원형 제단, 적석총, 우물과 석축 저장공이 확인되었으며, 도로 혹은 수로가 구획 사이에 조성되어 있다.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된 성벽 중 내성 북쪽 성벽의 ‘치’는 5미터 간격으로 13개가 발견된다. 이들 석성은 고구려 성 등에서 발견되는 초기 석성 형식을 보여준다.


다뎬쯔 유적: 지배자의 탄생
다뎬쯔향大甸子鄕에서는 3,700~4,000년 전에 건설된 토성이 발견되었다. 이 토성은 평지에 쌓은 평원성으로 무려 1,100여 개의 무덤이 함께 발견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무덤군이 판축으로 만든 성벽으로 보호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뎬쯔성은 아래 부분에 넓은 둔덕을 만들고 그 위에 성벽을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로 보아 원래 성벽은 훨씬 높았을 것이며 건설 연대는 무려 4,000년 전으로 올라간다. 인하대학교 융합고고학과 교수 복기대는 집단의 힘을 동원할 수 있는 지배자가 있어서 거대한 성을 쌓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얼다오징쯔 유적: 드러난 고대인의 생활 문화
얼다오징쯔二道井子 유적의 총 면적은 3만 제곱미터이며 노출 면적은 5,200제곱미터다. 기원전 2000년 전의 유적 퇴적층은 평균 8미터로, 여기서는 해자 등이 발견되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샤자뎬 하층문화 주거 유적 중 가장 완벽한 취락으로, 벽이 2.1미터나 될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현재 박물관 건설 등 유물 보존 조치가 진행 중이다.


인쉬 유적: 갑골문이 증명한 상나라의 존재
1928년 중국중앙연구원 역사어연구소의 둥쭤빈은 허난성에 있는 안양 샤오툰촌의 갑골문 매장 상황을 조사하고 이들 지역이 은나라의 수도일지도 모른다고 보고했다. 당시에 하나라와 은나라는 실존이 증명되지 않은 전설의 국가였으므로 중국 정부는 서둘러 발굴에 착수했고 총 15회에 걸쳐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로써 인쉬殷墟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인쉬 안에 있는 왕궁 주거 유적의 크기는 남북 약 300미터, 동서 약 100미터다. 길이가 30미터에 이르는 목조 궁전도 있는데 지붕은 짚을 엮어 덮었다. 인쉬 유적이 중요한 이유는, 총 2만 4,794개나 되는 갑골문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갑골문을 해독함에 따라 중국은 전설상의 나라로 여겨진 상나라가 실존했음을 발표할 수 있었다.


강상무덤·누상무덤: 계급사회 고조선의 순장 풍습
강상무덤은 기원전 8~7세기경의 고조선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하는데, 1964년 누상무덤과 함께 발굴되었다. 강상무덤은 둥근 언덕 위에 검은 흙 섞인 자갈을 씌운 큰 돌무덤으로, 동서 약 28미터, 남북 20미터의 장방형 묘역 안을 다시 크기를 달리해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누상무덤은 강상무덤보다 다소 늦은 기원전 7~5세기경 무덤으로, 언덕 위를 평평하게 고른 다음 동서 30미터, 남북 20미터의 직사각형으로 묘역을 만들었으며, 가장자리에는 석회암 판석을 가지런히 둘러놓았다. 부장품으로는 6개의 비파형 동검, 창끝, 화살촉, 비녀, 청동기를 만드는 거푸집과 장식품 등 총 20여 종 874점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이 무덤을 통해서 고조선 사회의 청동기 문화가 매우 발달했고, 노비가 존재했으며 많은 사람을 순장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귀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인돌: 굳건히 선 고조선의 유산
중국의 고인돌이 고조선과 직접 연계되는 것은 고조선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는 비파형동검·미송리형토기 등이 부장품으로 발견되기 때문이다. 중국 잉커우광역시 가이저우시 얼타이진 스펑산 인근에 있는 고인돌은 중국 최대 크기의 고인돌로, 다롄에서 선양으로 가는 길목 중앙 지점에 있다. 이 고인돌은 3,000여 년 전의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중국 ‘전국중점문물보호물’ 즉,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스펑위 고인돌은 잉커우광역시 다스차오시 후좡진 스펑위촌의 높다란 구릉에 있으며 스펑산 고인돌에서 약 20분 거리에 있다. 중국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탁자식 고인돌이다. 시무청 고인돌은 하이청시 시무진 다다오위촌 서북쪽의 구싸오스촌에 있는 구싸오스산 남쪽 비탈의 구릉에 있다. 고수석이라 해 2기가 있었는데 고석姑石은 현재까지 남아 있지만 수석嫂石은 파손되어 쓰러져 있다. 고석은 축조 기술이 랴오닝 지역의 어느 고인돌보다도 뛰어나 일찍부터 잘 알려졌다.


무씨사당: 돌에 새긴 건국신화
후한 시대 무씨 집안의 무씨사당은 산둥성 자샹현에서 동남쪽으로 1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우자이산 아래 우자인샨촌 북쪽에 있다. 언젠가 하수가 범람해 토사가 밀리는 바람에 한때 흙속에 묻혀 있다가, 청나라 건륭 51년(1766)에 황역黃易이라는 사람이 발굴해 벽돌로 사당을 세우고 내부 벽에 화상석畵像石을 끼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중에서 한국인의 주목을 끄는 것은 후석실後石室의 제2석과 제3석이다. 무씨사당의 화상석이 출토된 곳이 산둥성 근처라는 것은 매우 특기할 만한 일이다. 이는 2세기 무렵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도 단군신화를 알고 있었다는 뜻인데,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인 김용만은 산둥반도에서 굳이 단군에 대한 내용을 그린 것은 고조선의 문화가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진개묘: 기자조선 흥망의 흔적
2000년에 중국문물국은 만리장성을 넘어 다링강으로 가는 길목인 랴오닝성 젠창현 둥다장쯔촌에서 발견된 54기의 적석목곽묘에서 전형적인 청동단검을 발견했다. 학자들이 이 유물에 주목한 것은, 가장 서남단에 있는 청동단검이 분포 유적이라는 점과 고분 주인의 신분이 높은 점 등을 볼 때, 이 무덤의 주인이 연나라시대 장군의 무덤이라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무덤의 규모나 시대, 유물, 문화 양상을 검토할 때 연나라 장수 진개의 무덤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진개묘 추정 지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랴오닝성 젠창현 둥다장쯔촌을 GPS로 찾으면 간단하게 찾아갈 수 있다.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시리즈 근간 소개


유적을 알면 역사가 보이고, 역사를 알면 시대가 보인다.


〈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시리즈는 자칫 고루해질 수 있는 역사의 순간을 생동감 넘치는 오늘의 사건처럼 전하기 위해 유적 중심으로 기술한 새로운 역사서다. 저자인 이종호 박사의 다년간에 걸친 현장답사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고품질 사진을 바탕으로, 한민족의 각종 역사 유적과 유물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것의 의의를 짚는다. 이로써 지금까지 무미건조한 과거의 사실로만 소비된 역사의 순간을 눈으로 보듯 생생하게 독자 앞에 되살려낸다.〈유적으로 보는 우리 역사〉시리즈는 고조선 편, 훙산문화 편을 필두로, 광개토대왕비, 국내성 등 중국의 고구려 유적과, 임진강·한탄강 등지의 국내 고구려 유적지를 답사한 기록인 ‘고구려’ 편, 『삼국유사』에 등장한 현장을 직접 찾아, 일연이 쓰고자 한 참뜻을 그대로 풀어낸 ‘삼국유사’ 편, 강화도에서 출발해 진도를 거쳐, 제주도로 향한 바닷길에서 만난 삼별초의 흔적을 기록한 ‘삼별초’ 편이 출간 예정이다.


▣ 차례
들어가는 말


제1부 고조선 유적 답사
제1장 샤자뎬 하층문화와 상층문화
샤자뎬 유적: 청동기 유물의 보고
청쯔산 산성: 고대의 소도
싼쭤뎬 유적: 석성에서 보이는 조상의 얼
다뎬쯔 유적: 지배자의 탄생
얼다오징쯔 유적: 드러난 고대인의 생활 문화


제2장 인쉬 유적


제3장 고조선의 도읍지
평양성: 신비로 남은 고조선의 첫 수도
백악산 아사달: 한민족의 혼이 서린 명산
장당경: 패수에 감겨 흐르는 낙랑의 고향


제4장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기자조선의 도읍지, 고죽국
위만조선의 수도,험독


제5장 고조선 관련 유적 답사
강상무덤·누상무덤: 계급사회 고조선의 순장 풍습
고인돌: 굳건히 선 고조선의 유산
무씨사당: 돌에 새긴 건국신화
진개묘: 기자조선 흥망의 흔적


제2부 끊임없는 고조선 논쟁
제1장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논쟁


제2장 기자조선을 탈취한 위만


제3장 현대와 다른 랴오둥의 위치


제4장 위축되는 고조선


제5장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증거


나가는 말





▣ 본문 중에서
고조선 답사 루트는 두 갈래로 나눠보는 게 효율적이다. 첫 번째 갈래는 단군조선의 탄생과 연대가 유사한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를 찾아보는 것이다. 많은 학자가 샤자뎬 하층문화에 고조선이 존재했음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하지만, 고조선의 중심지가 어디인지 확정적으로 단정된 곳은 없다는 게 이곳을 답사할 때의 난점이다. 더불어 샤자뎬 하층문화 유적은 네이멍구 아오한기 지역에만도 2,300여 곳 이상이므로 이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학자들이 샤자뎬 하층문화에서 고조선이 성립되었다고 비정하는 중점적인 유적을 찾아본다. 이 일정에는 샤자뎬 상층문화에서 내려간 은나라의 유적지 인쉬殷墟도 포함된다. 두 번째 갈래는 고조선 후대 중 비교적 사료가 남아 있는 지역을 답사하는 것이다. 고조선 후대로 가면 기자조선, 위만조선이 핵심으로 등장하는데,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터전은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고인돌, 순장 무덤, 무씨사당 등 고조선을 대표하는 유적지가 포함된다.
(「들어가는 말」, 13쪽)


『삼국유사』는 단군이 아사달(평양성)→백악산 아사달→장당경을 거쳐 최초의 수도였던 아사달로 다시 돌아가 산신령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000여 년에 걸친 장구한 시기 동안 고조선에 네 번의 수도 이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일연은 고조선의 수도가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하며, 아사달의 위치를 무엽산, 백악 등 산으로 이해했다. 그 결과 아사달을 백주 또는 개성 동쪽의 백악궁으로 비정했다. 한편 이승휴는『제왕운기』에서 황해도 구월산을 아사달로, 『고려사』에서는 지금의 평양을 아사달로 비정했다. 반면 고조선의 수도가 한반도에 있지 않다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따르자면, 고조선의 수도는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에서 찾아야 한다.
(「제3장 고조선의 도읍지」, 51~52쪽)


단군과 관련된 내용은 비단 고구려 벽화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단군 탄생 설화에 대한 증거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에서 발견된다. 기원후 17년부터 168년까지 4대를 모신 후한 시대 무씨 집안의 무씨사당은 산둥성 자샹현에서 동남쪽으로 1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우자이산 아래 우자인샨촌 북쪽에 있다. 언젠가 하수가 범람해 토사가 밀리는 바람에 한때 흙속에 묻혀 있다가, 청나라 건륭 51년(1766)에 황역黃易이라는 사람이 발굴해 벽돌로 사당을 세우고 내부 벽에 화상석畫像石을 끼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이 중에서 한국인의 주목을 끄는 것은 후석실後石室의 제2석과 제3석이다.……후석실 제2석에서, 구름 위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두 사람 중 수염 있는 남자가 환인이고, 환인의 오른쪽에서 세 번째 천사가 들고 있는 3개의 구슬은 환웅이 받아온 3개의 천부인을 의미한다. 그림 아래쪽 우측의 세 봉우리는 삼위태백이다.……제3석 3층의 이인기수異人奇獸그림은 단군 탄생 설화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다. 이 그림은 천상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날개를 달고 있는 것도 아닌 것으로 보아 지상의 일을 담고 있다. 그림의 중심은 우측에 있는 두 괴인인데 화면의 모든 인물이 그곳을 향해 있다. 두 괴인 중 오른쪽이 호랑이고 왼쪽이 곰이다.……제3석 4층은『삼국유사』의 기록 그대로, 단군 탄생 후의 고조선 건국과 국가 경영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으로 추정한다. 마상에 앉아 민생을 살피는 귀인은 단군으로 볼 수 있고, 곡물의 이삭을 상징적으로 한쪽 어깨에 메고 있는 사람, 짐승을 잡거나 메고 가는 사람 등이 농업과 수렵과 목축업에 종사하는 백성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환웅이 아버지 환인에게서 물려받아 내려온 홍익인간의 이념을 이 땅에 구현하고 있는 장면이라는 설명이다.
(「무씨사당: 돌에 새긴 건국신화」, 109~113쪽)


사마천의『사기』는 고조선의 위치에 대해 매우 중요한 근거를 제시한다. 한 무제가 위만조선의 우거를 치기 위해 육·해군을 보냈는데, 사마천은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영토가 “동쪽은 바다에 이르고 조선에 미쳤다”고 적시했고 진나라와 조선이 국경을 접한 지역을 랴오둥이라고 말했다. 랴오둥은 한국사에 자주 등장한다. 이곳은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가장 동쪽 끝에 있는 지역을 말하는데 오늘날의 극동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현재 랴오닝성 랴오양시 지역을 흐르는 강을 랴오허강이라고 부르며 랴오허강 서쪽을 랴오시, 동쪽을 랴오둥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마천의『사기』만 보더라도 랴오둥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에 위만조선이 멸망한 후 한사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에 의문을 품을 여지가 없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북한의 평양 대동강 유역에서 ‘낙랑樂浪’이라는 글자가 적힌 유물 등이 발견됨으로써 한반도에서 한사군 위치에 대한 논란은 사실상 일단락되었다.
(「기자조선을 탈취한 위만」, 140~141쪽)


▣ 지은이 소개


이종호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시절 프랑스 교육부가 주최한 우수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기초 없이 빌딩을 50층 이상 올릴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을 비롯해 특허 10여 개를 20여 개국에 출원하는 등 이론과 실제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과학저술인협회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동안『과학삼국유사』,『과학삼국사기』,『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노벨상이 만든 세상』,『세계최고의우리문화유산』,『황금보검의비밀』,『미스터리와 진실』(전3권),『역사로 여는 과학문화유산답사기1~3』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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