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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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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는 사극 속에서 반복되는 군사사와 무예사 오류를 지적한 책이다. 고증 오류를 지적하고 실제 있었을 모습과 상황을 제안하며, 사극의 고증 문제를 극복할 방법을 제시한다. 활과 환도, 당파처럼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만큼 잘못 그려지고 있는 무기류부터 갑옷과 투구의 모습과 착용법, 전투마와 마구, 전술과 지휘 체계, 조선 군사들의 훈련 모습과 전투 시 움직임까지 무예사와 군사사에 관련해 폭넓게 고증했다. 단순히 역사서와 그림 등 사료를 보고 복원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저자가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현실적으로 고증해낸 결과다. 이를 통해 당대 무예사나 군사사 고증의 현실적 이유와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짚어보는 계기를 마련해본다.


역사 왜곡의 주범은 사극 속 고증 오류

10년 전쯤 MBC에서 <주몽>이 방송될 때, 고구려를 세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송일국”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사극은 사람들의 역사 지식이나 역사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 H. 카의 유명한 말처럼 역사는 끊임없이 소환되고 재해석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사극은 과거를 현재에 불러내는 가장 큰 장이다. <주몽>의 경우 최고 시청률이 51.9퍼센트에 달했고, <허준>이나 <태조 왕건> 같은 경우는 시청률이 60퍼센트가 넘기도 했다. 국민 절반 이상이 지켜보는 역사 매체라는 점에서 사극은 단순한 오락성 드라마 이상의 위치를 가진다.
문제는 사극의 영향력에 비해 고증은 지나치게 허술하다는 데 있다. 실제 그 시대와 상황에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당연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정규 교육 이후 역사 공부에 손을 놓았거나, 아직 역사 지식이 부족한 시청자들은 잘못된 정보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한마디로 사극에 속게 된다.
사극에 자주 등장하는 무기 중 하나가 삼지창처럼 생긴 당파다. 사극을 통해서만 당파를 접한 사람들의 눈에는 대단치 않은 무기로 보이지만, 당파는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를 통해 들어온 무기로, 담력이 강한 병사들만 사용한 특수 무기였다. 그런데 사극에 아무런 기준 없이 등장하면서 민속촌이나 역사 관련 테마파크 등에서 문지기나 포졸들도 당파를 들고 다니게 되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당파를 조선군의 보편적인 무기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손에 칼을 들고 말을 달린다?

역사 고증의 핵심은 ‘왜?’와 ‘실제로 그 시대에 가능했을까?’이다. 사극 속 전투 장면은 늘 박진감이 넘친다. 여기저기에서 창칼이 난무하고 그 사이를 주인공이 멋지게 뚫고 나가 전투를 벌인다. 그런데 전쟁터에 있는 어떤 사람도 제대로 된 군장을 갖추지 않고 있다. 칼이면 칼 한 자루, 창이면 창 한 자루, 조총이면 조총 한 자루가 전부다. 심지어 조총병은 탄환을 넣는 탄띠도 없고 화약을 담는 약통도 없이 맨몸으로 조총만 들고 나간다. 보급의 기본인 개인 수통이나 비상식량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전투는 단시간에 끝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전투 중에도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하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사극에서는 화려한 전투 장면에만 집중한 나머지, 기본 중의 기본마저도 모조리 삭제된 채 흘러가 버린다. 군사들이 기본적인 무장조차도 갖추지 않고 전투에 임하니 당연히 이야기가 끼어들 틈이 없다. 오로지 피가 낭자하고 화염이 가득한 살육의 현장으로 표현될 뿐이다.
전투의 사실성이나 객관성보다 극적 긴장감을 높이고 멋진 화면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실제로 그 당시에는 있을 수 없는 일, 전투 현장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심지어는 사료를 들여다볼 필요도 없이, 논리적으로만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대표적인 것이 한 손에 칼을 들고 말을 타고 달려 나가는 주인공이다. 우선, 칼은 기병의 대표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전통 시대 기병은 적이 원거리에 있으면 활로, 근접해 있으면 창이나 마상월도, 혹은 마상편곤과 같은 무기로 공격했다. 환도는 지금으로 치면 권총과 같은 일종의 보조 무기였다. 게다가 환도는 띠돈이라는 360도 회전 가능한 고리에 달아 허리에 차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야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극에서처럼 기병이 손에 칼을 들고 있으면 칼이나 칼집으로 말을 때리며 달리게 된다. 전투마가 칼집을 채찍으로 이해해 버리면, 기병이 칼을 뽑아 휘두르는 순간 말은 자신을 공격하는 것인 줄 알고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된다. 그러면 낙마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심지어 사극에 나오는 말들은 과거 사용된 중마형의 전투마가 아니라, 17세기 이후 영국에서 교배해 만든 경마용 서러브레드다. 서러브레드는 발목이 얇고 성격이 급해 전투에 부적합할 뿐 아니라, 쇠나 알루미늄으로 만든 편자를 신은 경주마가 초원을 달리면 곡선 구간에서 예외 없이 미끄러지게 된다. 또한 돌격해 나가는 주인공을 보면 투구를 쓰지 않거나, 쓰더라도 드림을 묶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전투 시 가장 중심적으로 보호해야 할 신체 부위는 목과 머리다. 머리를 다치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얼굴에는 시각 기능을 담당하는 눈이 있고, 목동맥은 신체의 주요 동맥 중 적에게 가장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아무 전술 없이 달려 나가면 뒤따라오는 보병들과 속도 차이가 나서 본대가 분열되고 만다. 무기에 관한 고민, 전투마와 무장에 대한 고민은 물론 아무런 전술적 고려도 없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선조들의 자존심을 깔아뭉개는 사극

사극을 통해 자리 잡은 우리 머릿속의 역사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 오래되고 비체계적인 경우가 많다. 불과 몇백 년 전의 군대와 전쟁이라고 해도 군사 개개인의 무예 실력에만 의존하는 단순한 전쟁을 떠올리곤 한다. 수천 년 전부터 고도로 훈련되고 조직화된 군대를 운용해온 것이 사실임에도 사극에서는 개개인의 용맹을 드러내기 바쁘다. 잘못 만들어진 전통 시대 군사와 전쟁에 대한 모습은 텔레비전 사극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어 거의 고착된 상태다.
조선 후기에는 검계(劍契)라는 폭력 조직이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조직폭력배와 같은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이들도 오(伍)와 열(列), 즉 대형을 맞춰 싸우는 훈련을 했다. 전통 시대 군사로 선발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오와 열을 맞추어 이동하는 것이었다. 오와 열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다양한 진법을 구상할 수 없다.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순신의 학익진도 오와 열을 맞추지 않고는 구사할 수 없다. 그런데 사극에서 보이는 모습대로라면 이순신은 전술 전략도 없이 불나방처럼 적진에 뛰어드는 장수가 될 것이고, 그의 군사들은 조직폭력배보다 못한 오합지졸이 될 것이다. 영웅적인 주인공, 화려한 화면에 집중한 나머지 우리 선조들을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은 중국식 갑옷을 입고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 장군은 호국과 충효, 항일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 위인의 대표 조각상이다. 그런데 그런 이순신 장군이 입고 있는 것은 중국식 견박형 갑옷이다. 갑옷은 시기마다 형태와 재질이 바뀌어왔다. 그래서 어떤 갑옷을 본다면 어느 나라, 어느 시기의 것인지 가늠할 수 있고 군대와 국가를 상징하는 깃발처럼 국가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갑옷뿐 아니라 한 손에 든 칼로 땅을 짚고 있는 자세도 잘못되어 있다. 잘못 고증된 우리나라 사극처럼 이순신 장군 동상도 ‘총체적 난국’인 셈이다.
어깨에 한 겹이 더해진 견박형 갑옷은 지금도 조선시대 사극에서 대표적인 장수들의 갑옷으로 등장하고 있다. 잘못 고증된 갑옷이 문제되는 다른 이유는, 제작 비용 때문이다. 갑옷은 제작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한 번 만든 갑옷은 계속 반복해서 사용된다. 잘못 고증된 갑옷도 무차별적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영화 <청풍명월>(2003)에서 주인공이 입었던 잘못된 갑옷이 아무런 수정 없이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 등장하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잘못된 갑옷이 대중의 인식에 박히고, 고증 문제에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나중에는 이순신이 일본도를 들고 나라를 지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사극의 고증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들

사극 고증 오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사극이 자꾸 고증을 무시하고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르로 변해가는 이유는 시청률 때문이므로, 시청률 지상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사전 제작이 필요하다. 소위 ‘쪽 대본’으로는 제대로 된 고증이 불가능하다. 셋째, 시대별·영역별 자문회의 상설화가 필요하다. 일회용 자문회의가 아니라 언제든 필요한 사람은 소속 방송국에 상관없이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상설 자문회의가 있어야 한다. 넷째, 아카이브 구축이 필요하고, 다섯째, 조연출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이들이 방송의 ‘디테일’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미술과 소도구의 체계적 제작과 관리가 필요하다. 한마디로 지금 방송국 소품실에 쌓여 있는 엉터리 무기와 갑옷 대신 제대로 만든 소도구들로 소품실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계와 시청자의 비판이 있어야 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청자가 많아질수록 사극의 역사 왜곡은 사라질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고증은 관점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사극의 무예사·군사사 고증대로라면 임진왜란 때 선조가 스마트폰을 꺼내 이순신 장군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쟁터 상황을 묻고 이순신 장군이 아주 힘들다는 이모티콘을 보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아니면 거북선 머리에 화염방사기를 달거나 판옥선 위에 기관총을 장착해도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본문 7쪽

우리나라 전통 활쏘기는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활시위를 당기는 방식인데, 양궁은 검지와 중지 사이에 화살을 끼우고 손가락 2개로 활시위를 당기는 방식이다. 그런데 KBS <불멸의 이순신>에 등장하는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타고 유럽으로 전지훈련이라도 다녀온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양궁 사법(射法)을 보여준다.
-본문 54쪽

시기마다 갑주의 형태와 재질도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사극 속 군사들은 시기와 상관없이 기기묘묘한 갑주를 입고 등장한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사극에서 중국의 대표적 갑주인 어깨에 한 겹이 더해진 견박형 갑주가 나오는 식이다. 심지어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도 국적 불명의 견박형 갑옷을 입고 있다.
-본문 91쪽

사극에서는 너무 자연스럽게 기병들이 손에 든 무기로 말의 엉덩이를 때리며 말을 움직인다. 당연히 그 상황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삼국시대에도 조선시대 환도처럼 칼은 허리에 묶어서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래야 두 손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드라마에서 기병들은 칼을 손에 들고 있으며, 칼집을 이용해 말의 엉덩이를 때리며 전속력으로 달린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보면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치명적인 실수다. 말이 기병이 사용하는 무기를 채찍으로 인식하게 되기 때문이다.
-본문 122~123쪽

열에 아홉은 타고 온 분신과도 같은 소중한 전투마에서 내린 후 말은 멀리 보내버리고 칼을 뽑아들고 적진에 달려든다. 당연히 부하들도 함께 하마한 후 적진을 향해 돌격한다. 심지어 주인공은 부하들도 다 쓰는 투구조차 쓰지 않은 경우가 많다. 넋을 놓고 드라마를 보는 동안은 이런 장면이 어색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곰곰
이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 투성이다.
-본문 157쪽

사극 속 전투 장면은 말 그대로 난장판 그 자체다. 공격하라는 명령과 함께 여기저기서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향해 달려든다. 마치 등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정신없다. 심지어 지휘관도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카메라의 현란한 움직임과 함께 난장에 합류한다. 여기에는 오와 열도 없고, 무기의 조합도 없다. 손에 든 무기가 무엇이든지 간에 무조건 부딪히며 쓰러져 갈 뿐이다. 분명히 출정 장면에서는 오와 열을 칼같이 맞추었던 군사들이 전투에 돌입하면 정신을 놓은 듯 저마다 적에게 달려간다. 이런 전투는 지극히 비조직적이고, 비전술적이다. 전통 시대든 현대든 군대의 전투 행위는 철저한 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 사극에서 전통 시대 우리 군사들의 전투를 시정잡배들의 패싸움 정도로 몰아가는 일은 더는 없었으면 한다.
-본문 163~164쪽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에 휘하(麾下)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휘(麾)는 조선시대에 주로 사용했던 긴 꼬리가 달린 특수 깃발을 말한다. 휘가 움직이면 하급 지휘관들은 그 명령에 따라야 했다. 하급 지휘관들도 작은 휘를 만들어 부대원을 통제했다. 휘하라는 말은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데, 어째서인지 휘는 사극에서 본 적이 없다. 부디 무전기도, 확성기도 없었던 시대에 목소리만으로 군대를 통솔했다고 믿게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군사들의 움직임을 만들고 싶다면 먼저 전통 시대 군사 신호 체계를 들여다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본문 174쪽

사극 속 개선 장면의 핵심은 화려함이다. 수많은 인파 사이로 당당하게 전쟁에 사용한 무기를 앞세워 걷는 장면에서는 배경음악까지 위풍당당하다. 그러나 이런 장면은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장수는 무장해제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이는 혹시 모를 반란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는 부하들은 물론이고 군중에게 영웅으로 대접받기에 국가를 대표할 만한 인물로 추앙받기 쉬웠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수와 군사들은 일단 도성 10리 밖에 임시 군영을 설치하고, 완전하게 무장을 해제한 후 소수의 인원만 데리고 왕에게 인사하게 되어있었다. 그다음 도성 방위군과 함께 도성으로 진입했다. 이때도 역시 중무장이 아니라 경무장의 형태로 움직였다.
-본문 221~222쪽





▣ 차례

저자의 말: 역사는 미래를 보는 거울이다

들아가는 말: 무예사와 군사사 고증은 생존의 문제


1부 조선 무인의 무기 사용법

도와 검은 무엇이 다른가
환도는 허리에 차고 다녔다
당파는 찌르는 무기가 아니다
장창은 단 한 번만 찌른다
조총과 화포 쏘기
활은 어떻게 쐈을까?
불화살과 포탄


2부 조선 무인은 무엇을 입고 전쟁에 나갔을까?

투구를 쓰지 않는 무인은 없다
누가, 어떤 갑옷을 입었나
군장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나
활과 화살은 어떻게 가지고 다녔을까?
화살 깃의 수에도 이유가 있다
등자와 채찍의 한계
경마용 말과 영국식 안장
기병은 어떻게 훈련했을까?


3부 조선 장수는 어떻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까?

대장의 일기토는 일어날 수 없다
전투의 오와 열이 승패를 가른다
깃발과 악기, 화포로 전투를 지휘했다
활은 언제, 어떻게 쏘았나
불과 바람을 다스려야 전투가 된다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척후병의 활약
야간 기습에는 어떻게 대비했을까?
무기는 권력이자 전투력

나가는 말: 역사물 고증 오류를 해결하기 위한 7가지 대안





▣ 지은이 소개 __ 최형국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무예사·전쟁사 연구를 통해 「조선후기 권법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 「정조대 화성 방어체제에 따른 장용영의 군사조련과 무예훈련」등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더불어 『정조의 무예사상과 장용영』(경인문화사, 2015) 등 역사학술서와 『친절한 조선사』(미루나무, 2007), 『조선무사』(인물과사상사, 2009)와 같은 교양 역사서를 통해 일반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역사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 푸진 삶이 좋다며 가난한 풍물패 상쇠를 마다하지 않았고, 잊혀버렸던 조선의 마상무예를 복원했으며, (사)무예24기보존회 시범단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시범단 상임연출을 맡아 무예 연출과 연구를 함께하는 ‘문무겸전’의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직 마음속에 ‘무인武人’이라는 두 글자를 짙게 써내려가며, 한 손에는 칼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실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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