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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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 인문학
전통 무예에 담긴 역사·문화·철학

지은이: 최형국
쪽수: 312쪽 | 판형: 140×205(국판 변형) | 값: 15,000원
분야: 역사>한국사 / 전쟁사
ISBN 978-89-5906-442-7 03910
출간일: 2017년 5월 8일

키워드:
전통 무예, 인문학, 역사, 문화, 신체 문화, 사냥, 놀이, 군대 지휘, 태권도, 씨름, 택견, 격구, 마상무예, 국궁, 마상재, 검무, 검과 인생, 전투의 궁합, 장수의 자질, 무예의 본질, 무예 수련의 목적과 방법, 힐링과 수련, 내 몸에 맞는 무예, 호흡법, 이순신, 명량대첩의 비결, 조선시대 군사 훈련과 무과 시험, 정조의 문무겸전론, 칼의 발전, 무예의 역사, 만들어진 일본의 무사도와 사무라이, 몸을 인정하는 철학, 현실 무예의 필살기, 무예의 섬세함, 무예의 상대성, 신보수검, 수파리, 담력정쾌



▣ 출판사 서평

『무예 인문학』은 무예에 담긴 역사, 문화, 철학 등 인문학을 소개한 책이다.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검술을 수련해온 전통 무예 전문가이자 무예사(武藝史) 전문가가 무예에 담긴 인문학적 의미, 한국 무예의 특징과 가치를 알려준다. 무예는 문화의 일부이며, 무예의 발달에는 역사의 변화가 반영된다. 무예 수련 과정에서는 그동안 천시되어온 '몸의 인문학'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균형을 잃어가는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전통 무예에는 우리 고유의 몸 문화가 스며들어 있으며, 여기에는 보편적인 세계화의 가능성이 있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 전통의 몸 문화를 발견하는 한편, 무예에 담긴 철학을 통해 우리의 삶에 한 걸음 더 깊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무예는 어떻게 인문학이 되었나?

무예(武藝)라고 하면 과거 장수나 무술가의 전유물, 혹은 무협 영화나 게임에 나오는 소재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남자들의 로망' 중심에는 무예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무예를 역사의 한 부분이자 현실적인 문화 요소로 여기고 접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무예라고 하면 낯설고 폭력적이며 어려운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무예는 의외로 우리 생활 곳곳, 역사의 많은 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무예 수련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가치와 의미도 수없이 많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무예에는 공동체의 문화, 사유의 단초와 철학적 결실이 담겨 있다.
인류가 이족 보행을 하고 손을 쓰게 되면서, 즉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무기를 사용하고 원시적 형태의 무예를 발달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친 자연에서 생존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되면서 무예는 사회성을 띄게 되었다. 살생의 위험을 낮추고 공동체 내의 순위를 결정짓는 수단으로 무예를 활용하면서 스포츠가 만들어졌다. 몸짓이 더 부드러워지고 유쾌해지면서 놀이와 춤이 만들어졌다. 무예는 인간의 역사와 생활 전반을 이끌며 당대 신체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전장에서는 개인의 생명뿐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했다. 그래서 진정한 지도자는 무예를 중시했고 장수들은 무예를 실전에서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 끊임없이 훈련했다.
인문학은 사람과 사람이 만든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 인간다움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 바탕에는 '인간' 자체가 있다. 무예는 인간의 생존 본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인문학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무예에는 생존을 위한 야성과 지성이 함께 담겨 있다. 무예는 인간이 살아온 생존의 길이자 역사의 길이다.


무예에 담긴 예술

무예는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인간의 생각과 감정은 무예로 나타난다. 개인의 생각뿐 아니라 공동체의 소망과 기원 역시 무예로 표현되어왔다. 인류가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무예는 공동체의 에너지를 집결하는 수단이 되었다. 공동체를 안팎으로 굳건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예가 필수적이었다. 무예는 전쟁과 권력 강화를 위한 군사력으로 발전하는 한편, 축제 현장에서는 유희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무예의 예술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검무(劍舞)다. 검무는 축제나 연회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무기를 들고 춤을 추면서 하늘과 소통을 시도하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으며 아군의 승리를 북돋웠다. 검무는 날로 화려해졌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기방의 기녀도 검무를 출 수 있어야 제대로 대접받았다. 혜원 신윤복(申潤福)의 <쌍검대무(雙劍對舞)>에는 검무를 추는 무녀가 등장하는데,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무예도보통지』의 쌍검법 중 초퇴방적세로 보인다. 『무예도보통지』에는 우리의 가장 오랜 검법인 본국 검법이 신라 화랑의 검무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검무 안에 춤과 무예의 본질이 함께 살아 있다.


칼로 쓴 역사

무예는 역사와 함께 발전하고, 무예의 발달이 역사의 발달을 이끌기도 한다. 인류의 대표적인 병기인 칼의 역사에는 인류의 역사가 담겨 있다. 최초의 칼은 꺾은 나뭇가지를 휘두른 데서 시작했다. 나무칼은 돌칼로 대체되었고, 떼어낸 돌칼을 사용하다가 날카롭게 갈아낸 돌칼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간석기라고 부르는 신석기시대가 되었다. 이후 불을 다루고 금속을 발견하면서 구리로 만든 금속 검을 만들게 되었다. 구리는 산화해 녹색으로 변했기에 청동(靑銅)이라 불렸다. 그래서 이 시기를 청동기시대라고 부른다. 이후 불을 다루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철로 칼을 만들게 되었고, 그때부터 철 칼을 가진 자가 패권을 쥐는 시대가 되었다. 철광석 산지를 두고 전쟁이 벌어지곤 했는데, 고구려의 대북방 확장 전투, 가야 연맹의 이합집산과 파멸도 이와 관련 있다. 그렇게 고대국가가 정착되었고, 철을 다루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검(劍)보다 내구성이 강한 도(刀)를 활용하게 되었다. 철제 도가 보편화되면서 검술은 찌르기보다 베기 중심으로 변화했다. 칼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전장에서 실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패용법도 발전했다. 일본에서는 칼을 뒤집어 허리띠에 꽂는 형태로 발전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칼집에 회전식 고리인 띠돈을 달아 허리띠에 차는 방식을 사용했다.


왜 무인은 인문학을 공부했을까?

조선시대에는 과거를 통해 공식적으로 무관을 배출해냈다. 무과 시험을 보면 조선이 요구한 무인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시대 무과 시험은 활쏘기와 마상무예 중심으로 이루어진 6가지 무예 시험과 이론 시험인 강서(講書)를 보았다. 강서에서는 전술 지식도 요구했지만, 그보다 유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문제가 많았다. 무관을 유학 지식을 겸비한 관료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병서도 전투에서 싸우는 방법보다 '장수의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다루었다. 장수의 마음가짐과 인문적 소양이 전투의 승패를 결정하고 군사들의 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선 전기 병서인 『병장설』은 장수를 상중하로 구분하는데, 상(上)에 해당하는 장수는 군사들의 움직임과 고통을 이해하는, 유교적 학업을 닦은 사람이다. 중(中)으로 여기는 장수는 무용(武勇)을 숭상하지만 경거망동을 삼가고 관료로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고, 하(下)로 분류되는 장수는 힘을 믿고 세력에 의지하며 사람을 거만하게 대하는 자라고 했다.
또한 무예를 수련하다 보면 『논어』와 같은 고전에 나오는 말들이 명확하게 다가오며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이 책에서는 『논어』에서 50세를 말하는 '지천명(知天命)'을 "힘을 빼고 자연스러움을 찾을 수 있는 나이"라고 풀이한다.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인간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고 자연스러워지는 일이라는 것이다. '문질빈빈(文質彬彬)'에 대해서는, 무예도 내용과 형식이 모두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무예 철학의 기본은 실전성이며, 승리와 극복은 무예의 존재 이유다. 그런데 그런 내용을 버려두고 형식이나 모양에 억눌려 보여주기식으로 흘러버리는 화법(花法)은 무예가 아닌 다른 행위나 몸짓이 되어버리고 만다.


무예, 몸의 인문학

"체력이 실력이다", "의자에 오래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힘으로 공부한다"는 말을 한다. 머리를 쓰는 일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몸과 머리는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몸'을 무시하고 '정신'만 강조해왔다. "체력이 떨어졌어도 정신력으로 극복하면 됩니다!" 같은 말에서 몸보다 정신이 우월하며 정신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정신만능주의'를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은 몸이다. 고귀한 '정신'을 이해하려면 '정신'을 담는 그릇인 '몸'을 이해해야만 한다. 이제는 그동안 천시받았던 몸의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무예다. 무예는 정신에 밀려 무시당했던 몸을 복권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다. 오늘날에는 무예 수련으로 얻어진 승부욕과 야생적인 전투 본능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무예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것이다.
과거에도 '문(文)' 대신 '무(武)'로 나라를 개혁하려 한 시도가 있었다. 바로 조선의 22대 왕 정조의 문무겸전론이다. 정조는 무 중심의 문무겸전론으로 기득권층인 노론을 압박하고, 장용영으로 군권을 장악하는 한편 새로운 인재 양성을 추진했다. 정조 이전의 문무겸전론은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에게 유학적 교양을 요구하는 논리였으나, 정조 대의 문무겸전론은 그동안 천시되었던 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끌어내 국정 운영의 철학으로 발전시킨 것이라 보아야 한다. 정조의 문무겸전론의 핵심은 '무적(武的) 기풍 확산을 통한 국정 쇄신'이라고 할 수 있다. 정조는 병전(兵典)을 중심으로 법전을 변화시키고, 『병학통兵學通』과 『무예도보통지』 등 병서를 간행했다. 무장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숭모(崇慕)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정조는 '무'로 정치적 약점을 극복하고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던 셈이다.





▣ 본문 중에서

인간이 무기를 만들고 자신을 보호하는 갑옷을 입기 시작한 이유는 자연과의 투쟁, 즉 사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였다. 석기시대에 어렵게 돌을 깨거나 갈아서 창날을 만들고 화살촉을 만든 이유는 인간보다 강한 동물을 사냥해서 생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정착 생활을 하고, 동물을 직접 키우면서 사냥은 전투를 대신해 군사·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특히 국가라는 조직체가 만들어지고 군대라는 합법적인 무장 집단을 양성하면서 사냥은 군대를 훈련하는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인간과 인간이 펼치는 전쟁은 인간과 동물이 겨루었던 사냥의 또 다른 형태였다.
-본문 23쪽

당시 일본에서 통신사 일행의 글 솜씨를 비롯한 문화적 우수성은 감동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통신사 일행의 호위 무관으로 경호를 책임졌던 마상재인의 뛰어난 기마 실력은 당대 ‘한류 스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기 절정이었다. 심지어 당시 일본 최고 정치·군사 지도자인 관백(觀白)이 직접 통신사 우두머리에게 다음 사행 때도 마상재인이 동참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을 정도다.
-본문 45쪽

무예에도 철학이 있다. 단순히 몸을 이용해 무언가 쳐부수고 굴복시키는 것이 무예의 전부는 아니다. 다만 무예 철학의 기본은 실전성에서 출발하며, 무언가를 이기고 뛰어넘고자 하는 것은 무예의 존재 이유기도 하다. 형식이나 모양에 억눌리거나 보여주기식으로 흘러버린 일명 ‘화법(花法)’은 이미 무예의 본질을 벗어난 다른 신체 행위인 것이다. 무예의 실전성은 무예의 정체성과 직결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이 수련하고 풀어가기에 반드시 문화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무예는 당대 몸 문화의 결정체이자 절대적 반영물이다.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소위 ‘존재의 영속성’을 위해 무예를 수련해왔고 조금씩 진화 과정을 거쳤다.
-본문 55~56쪽

칼은 인류 문화 발전의 산물이며, 그 나라의 문화를 담고 있다. 칼의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인류의 역동적인 개척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무엇인가를 지키고 정복하기 위한 인류의 역사, 그 시작과 끝에 칼이 있다.
-본문 130~131쪽

정조가 즉위 초반부터 제기한 성리학(경학)에 대한 비판과 문무겸전론의 설파는 당시 기득권층인 노론을 압박하기 충분했고, 국정 장악을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이 되었다. 무 중심의 문무겸전론은 당파에 치우쳐 있던 문신을 압박하는 좋은 수단이 되었다. 정조 이전의 문무겸전론은 군사를 지휘하는 장수에게 유학적 교양을 요구하는 논리였으나, 정조 대의 문무겸전론은 문신들에게도 직접적으로 적용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본문 144~145쪽

무예는 자기 몸과의 ‘전투적 소통’이다. 적의 목숨을 취하는 일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극한 소통’을 통해서 자신의 의지와 몸의 흐름이 일치될 때 비로소 본질적 가치에 도달할 수 있다.
-본문 165쪽

무예에서도 상대를 인정하고 그 움직임을 이해해야만 비로소 자유로운 몸짓이 가능하다. 상대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저 혼자 움직이는 것, 의미 없는 몸짓에 불과하다. 세상살이 또한 마찬가지다. 부든 권력이든 제아무리 가득 채우고자 해도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하게 채울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 인정하고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모습이다.
-본문 252쪽

칼을 한 번 잡아본 사람은 칼에 ‘로망’을 갖게 된다. 큰 칼을 멋지게 뽑아 시원하게 무언가를 싹둑 잘라보고 싶은 환상을 품는다. ‘칼을 뽑았으면 썩은 무라도 베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칼을 쥐면 멋지게 휘둘러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아무리 고수라도 한칼에 상대를 두 동강 낼 수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동작이 클수록 공백이 생겨 방어가 취약하기에 쉽게 움직임을 만들 수 없다.
-본문 261쪽

무예 수련은 자신의 몸과 끊임없는 투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어떤 자세라도 몸에 익히기 위해서는 수천 번, 수만 번 동일한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몸에 새겨야 한다. 그 과정에서 무예가 조금씩 몸과 일체화되면서 자신만의 몸짓이 나오게 된다. 같은 자세를 배운다 해도 사람의 몸은 서로 다르기에 움직임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본문 280쪽

근래에 무예가 신체 수련에 그치지 않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시범 공연화하면서 4가지 수련법 중 베기에만 치우쳐지고 있다. 빠르게 대나무나 짚단을 연속해서 베어넘기거나, 쌍수도를 비롯한 큰 칼 혹은 자루가 긴 월도를 사용해 짚단 십여 개를 단번에 자르는 모습은 관람객에게 호평을 받으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래서인지 다른 수련법들은 팽개쳐버리고 오로지 짚단, 대나무와 사투를 벌이는 수련자가 부쩍 많아졌다. 좀더 잘 베기 위해 실전에서는 사용하지도 못할 면도칼보다 얇고 가벼운 삼각도를 이용해 짚단을 난도질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칼은 얇은 대나무조차도 벨 수 없는 특수한 짚단 베기 전용 칼이며, 짚단에 작은 모래알이라도 있으면 단번에 칼날이 손상될 정도로 유약한 칼이다.
-본문 293쪽




▣ 차례

머리말_우리가 잃어버린 ‘몸의 인문학’을 찾아서

제1부 무예에 담긴 인문학

제1장 무예에 스며든 문화

무예는 문화의 산물이다
사냥과 무예, 그리고 정치
무예는 한 편의 시다
태권도와 합기도 중에서 더 센 것은?
도깨비도 좋아한 대중 스포츠, 씨름
신분 상승의 지름길, 격구
일본이 열광한 원조 한류, 마상재
우리 몸 문화의 걸작, 태권도

제2장 철학적인 무예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무예적으로 행동하라
지키고 깨고 떠나라
누구에게나 자신의 자리가 있다
상대가 없다면 나도 없다
칼의 이치에 담긴 삶의 철학
아름다운 칼의 철학, 검무
수련을 계산할 수 있는가?
나를 이기는 것이 어렵다

제3장 무예의 종착점, 전쟁

전투에도 궁합이 있다
승리를 만드는 능력과 자질
명량대첩의 승리 요인
바늘 하나로도 적장을 잡는다
총 쏘는 것이 무예였던 이유
조선시대 군사훈련의 비결
종이로 겨울을 견뎌내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착호군

제4장 칼로 쓰는 역사

칼의 역사는 문명의 역사
우리 무예의 역사
무과를 통해 보는 조선
전통적이며 보편적인 무예, 마상무예
무예로 조선을 개혁하다
활을 당기며 때를 기다리다
무사도라는 환상
무예에 담긴 ‘다이나믹 코리아’


제2부 몸으로 읽는 인문학

제5장 무예는 몸으로 실천하는 인문학
몸과 소통하라
체력도 실력이다
잘 걷는 것에서 무예가 시작된다
자연스러울 수 있는가?
호흡 속에서 변화를 읽는다
내 몸에 맞지 않는 무기와 자리는 파멸을 부른다
무예는 몸과 마음의 조화
천시받아온‘몸’의 부활

제6장 무예와 삶, 무인의 삶
무예의 맛, 삶의 맛
진짜 필살기는 단순함에서 나온다
우리 활에서 배우는 인생
강함을 경계하고 부드러워져야 한다
장점은 과신하는 순간 나를 위협한다
단점이 장점이 되고, 장점이 단점이 된다
나를 속이는 것이 진짜 문제다
때를 기다릴 것인가, 만들 것인가?

제7장 칼을 품은 무인의 마음
마음의 잔을 비워라
지루함을 즐기는 일, 느림의 미학
섬세함이 실력이다
‘왜’라는 질문이 만드는 무예
상대를 인정하고 상대성을 이해하라
멈출 수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무예 수련과 힐링의 목적은 같다
단칼에 벤다고 칼이 아니다

제8장 배우고 수련하니 기쁘지 아니한가
몸은 기억한다
가르치며 배우고 배우며 가르친다
현장이 선생이다
무예 수련은 구도의 길이다
무예에 정답은 없다
몸으로 기억하고 글로 남긴다
신보수검, 무예 수련의 순서
칼로 벤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

부록_우리 무예 관련 고전









▣ 지은이 소개 __ 최형국

칼을 잡고 수련한 지 20여 년이 조금 넘은 검객(劍客)이며 인문학자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사·전쟁사·무예사를 연구해왔다. 현재 중앙대학교 강사와 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에서 상임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친절한 조선사』(미루나무, 2007), 『조선무사』(인물과사상사, 2009), 『조선후기 기병전술과 마상무예』(혜안, 2013), 『조선군 기병 전술 변화와 동아시아』(민속원, 2015), 『정조의 무예 사상과 장용영』(경인문화사, 2015),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인물과사상사, 2016) 등의 저서와 「조선 전기 무과에서의 격구 도입 배경과 그 실제」, 「조선 초기 군사 전술 체계와 제주 전투마」, 「18세기 활쏘기(國弓) 수련 방식과 그 실제」, 「조선 후기 권법의 군사 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등 다수의 무예사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연출한 작품으로는 논버벌 타악극 <무사&굿>, 무예 뮤지컬 <관무재-조선의 무예를 지켜보다>와 무예24기 상설 시범 <장용영, 진군의 북을 울리다> 등이 있다. 오직 마음속에 ‘무인(武人)’이라는 두 글자를 짙게 써내려가며, 한 손에는 칼 나머지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실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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