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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서, 조선을 말하다
혼란과 저항의 조선사

지은이: 최형국 | 쪽수: 360쪽 | 판형: 170×225(크라운판 변형) | 값: 16,000원
분야: 역사>조선사 | ISBN 978-89-5906-497-7 03910 | 출간일: 2018년 4월 18일

키워드: 병서, 조선군, 군사 훈련, 진법, 무기, 군사 무예, 명령 체계, 성곽과 방어법, 병학, 군사제도, 전쟁의 역사, 중국 병서, 임진왜란, 정묘호란, 『진법』,『진도지법』, 『역대병요』, 『오위진법』, 『병정』, 『병장설』, 『국조정토록』, 『무예제보』, 『신기비결』, 『무예제보번역속집』, 『마경초집언해』, 『연기신편』, 『병학지남』, 『진법언해』, 『수성책자』, 『무예신보』, 『병학통』, 『무예도보통지』, 『해동명장전』, 『민보의』, 『융원필비』, 『무비요람』, 『훈국신조기계도설』, 『융서촬요』, 『훈국총요』, 『보병조전』, 『조선의 궁술』, 『무예도보신지』


▣ 출판사 서평
『병서, 조선을 말하다』는 병서를 통해 조선시대를 살펴본 책이다. 군대와 군사에 관한 책인 병서는 전쟁과 반란 등 굵직한 사회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의 주요 병서들을 소개하며, 병서에 반영된 조선의 모습을 생생하게 읽어낸다. 군대의 조직과 전술, 군사들이 사용한 무기, 조선에 영향을 미친 주변국들의 변화까지 폭넓게 조망하며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환란을 이겨내고 혁신을 이루어냈는지 살펴본다.

조선사를 꿰뚫는 새로운 키워드, ‘병서’

“병서라는 것은 크게는 국가의 흥망성쇠와 연관되어 있고 작게는 뭇 백성의 삶과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선조실록』

병서(兵書)는 말 그대로 병(兵) 즉, 군대에 관한 책이다. 역사는 평화롭게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외적이 침입하기도 하고, 내부의 적이 힘을 키워 내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회 혼란으로 먹고살기 힘들어진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환란을 지혜롭게 수습하고 사회 변화에 잘 대응하면 나라가 번성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국력이 약해지고 결국 망하기도 한다. 그 때마다 격변의 첨단에 서는 단체가 바로 군대이며, 그런 군대를 다스리는 책인 병서에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가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
『병서, 조선을 말하다』는 조선 건국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정조의 개혁 정치, 쇄국과 문호 개방 등 조선 500년을 훑으며 굵직한 사건들과 조선 내외의 정치·사회 변화의 맥을 짚어보고, 시대에 발맞추어 등장한 병서들을 소개한다.
조선의 ‘설계자’라 할 수 있는 정도전은 그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하지만, 그가 『진법』이라는 병서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귀족들이 거느린 사병(私兵)을 혁파하고 공병(公兵)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국가에 걸맞은 강력한 군대를 만들기 위해 정도전이 쓴 병서가 바로 『진법』이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를 비롯한 숱한 업적을 남겼는데, 그중에는 4군 개척과 같은 국방 업적과 함께 병서 제작도 있다. 세종이 즉위했을 때는 조선이 만들어진 지 30년이 채 안 되었을 때로, 아직 국가가 안정되지 않았던 시기다. 게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손에 피를 묻히며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종은 국가의 기틀을 다지는 일련의 작업을 해야 했고, 그 일환으로 군대의 역사를 통합 정리한 『역대병요』를 펴냈다.
하지만 『역대병요』는 중국의 전쟁사가 중심이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서 문종 대에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 전쟁사를 모은 『동국병감』이 편찬되었다. 『동국병감』에는 우리 민족이 전쟁이라는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내용이 담겨 있기에, 한일병탄 이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한글판으로 간행하기도 했다. 문종은 뛰어난 자질을 갖춘 왕이었지만, 건강이 좋지 않아 단명했고 어린 단종이 뒤를 이었다. 그리고 세조가 왕위를 찬탈했다. 이 사건으로 조선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세조는 군사력을 강화해 왕권을 안정시키려 했다. 그 중심에 『오위진법』이 있었다. 태조 대부터 군대 편성을 고려의 2군6위 방식에서 5사(司) 체제로 개편했다. 세조가 사(司)를 위(衛)로 개칭하면서 본격적인 오위 시대가 열렸다. 『오위진법』은 새로운 조선군 편제에 맞춘 전술서로, 임진왜란까지 조선군의 핵심 전술서로 활용되었다. 조선의 장수라면 누구나 『오위진법』을 읽고 이에 따라 전술을 짤 수 있어야 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에 대응하라!
‘적의 것’도 ‘내 것’으로 만드는 유연함

우리는 흔히 조선을 전통을 중시한 보수적인 나라라고 생각한다. 조선 말 쇄국 정치나 위정척사, 통상 반대 등이 쉽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은 생각보다 유연한 나라였다. 임진왜란 이후 간행된 병서들을 살펴보면 중국의 신식 무기와 전술, 왜검 등 일본 무기까지 필요하다면 왕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수 나라의 것’이어도 내 나라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배척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은 조선 사회를 뿌리부터 뒤흔든 대형 사건이었다. 일본의 침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조선 초기 주적은 북방 여진족으로, 모든 군대 시스템이 여진족을 대비하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조선군의 주요 전술도 소규모 전투 중심이라 대규모·장기간 전쟁에는 알맞지 않았다. 게다가 조선은 화약 기술이 상당히 발달했는데도 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 조총 등 화약무기 활용에는 소극적이었다. 일본군은 조총 부대를 선두에 세워 선제 사격을 가한 뒤, 단병접전을 펼치는 전술로 쉽게 승기를 잡았다. 조선에 파병되었던 명의 원군도 전술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했다. 임진왜란의 흐름은 근접전에 능한 절강보병(浙江步兵)을 동원한 조명연합군의 평양성 탈환 전투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절강병법이 일본군에 대항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게 입증되자 조선에서는 중국의 명장 척계광이 쓴 『기효신서』를 적극 받아들여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병학지남』 등의 병서를 편찬했다. 척계광이 저장(절강) 지역에서 개발한 등패와 낭선 같은 무기와 소규모 부대 운용인 원앙진법도 이때 도입되었다. 화약 무기 사용을 확대하기 위해 『신기비결』 같은 병서도 편찬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항복한 일본 병사인 항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항왜에게 화약을 만들게 하는가 하면 검술 교관 자리를 맡기기도 했다. 김체건 같은 무인은 왜검법을 제대로 익히기 위해 왜관에 잠입해 검술을 익혀오기까지 했다.

영조·정조가 조선의 부흥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
: 문무겸전론과 다양한 병서 편찬

영조와 정조 시기는 조선의 부흥기로 꼽힌다. 영조는 강력한 군권 확립과 도성의 안전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선 군대의 폐단을 혁파하려고 임진왜란 이후의 속오법 대신 조선 전기의 오위 체제로 회귀했다. 이 과정에서 『진법』을 개정한 『병장도설』, 변화한 군대에 맞춘 전술서 『속병장도설』 간행이 이루어졌다. 또한 『수성책자』로 강력한 한양 수호 의지를 보여주었다.
정조 대는 조선시대 최대의 병서 편찬 시기였다. 정조는 ‘문치규장무설장용(문은 규장각으로, 무는 장용영으로 다스린다)’을 내세워 왕권을 강화했다. 정조의 무에 대한 특별한 인식은 장용영 설치와 함께 다양한 병서의 편찬으로 구체화되었다. 조선시대 병서 편찬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편찬 준비 단계부터 새로운 인재의 등용이 이루어졌고, 병서가 간행되면 군제도 변화했다. 병서 편찬은 군무 전반을 아우르는 정책적 사업이었다.
정조는 정통성의 한계도 병서 간행으로 극복했다. 사도세자가 만든 『무예신보』는 보병 무예 18기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정조는 여기에 마상무예 6기를 더해 『무예도보통지』를 간행했다. 그렇게 생부인 사도세자의 위업을 세상에 알렸다.
『경국대전』 이후 300년 만의 통합 법전인 『대전통편』의 편찬, 이를 바탕으로 한 『병학통』과 『무예도보통지』의 간행은 무를 통한 정조의 강력한 정국 장악 의지를 보여주었다. 정조의 문무겸전론은 평가절하되었던 무장의 위신 제고에서도 드러난다. 정조는 이순신을 제갈공명에 비유하며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무장들의 전기집인 『해동명장전』을 간행했다. 이는 임진왜란 때 참전한 장수보다 선조를 호위한 문신을 공신에 책정한 데 대한 반발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조의 무장 재발견은 왕에게 충성할 것을 권고하는 효과도 있었다.

병서, 조선을 지키다

헌종과 철종이 세도정치에 빠져들고, 외부로는 이양선의 잦은 출몰, 내부로는 쉼 없는 민란이 일어났던 조선 말기에도 병서는 간행되었다. 조우석이 집필한 『무비요람』은 중국 병서의 핵심을 모은 백과사전으로, 군사를 다루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방법이 들어 있다. 흥선대원군의 집권기에는 신헌이라는 걸출한 무인이 『훈국신조군기도설』과 『훈국신조기계도설』를 편찬했다. 『훈국신조기계도설』은 신식 무기를 어디서든 제작할 수 있도록 자세한 제작법을 담은 실용적인 병서였다.
조선이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뒤에도 병서 간행은 멈추지 않았다. 한일병탄 2년 전인 1898년에는 무관학교 교관을 중심으로 근대식 군사훈련을 위한 『보병조전』이 편찬되었다. 『보병조전』에 수록된 군사훈련과 전술훈련은 이후 만주에서 활약한 독립군의 훈련에도 활용되었다.
1929년에는 황학정(黃鶴亭)에서 전통 활쏘기를 연구하던 조선궁술연구회가 『조선의 궁술』을 발간했다. 일제강점기 무예 훈련은 일본식 사무라이 정신을 기반으로, 언제라도 국가에 헌신할 수 있는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의 ‘몸 기르기 문화(體育)’는 일제의 억압과 통제로 왜곡되었다. 『조선의 궁술』은 왜곡된 몸 인식을 전통 활쏘기로 바로잡고자 한 책으로, 조선 전통 활과 화살에 대한 설명부터 활쏘기 풍속, 우리 역사 속 명궁까지 담아놓았다.
1949년 무예가 곽동철이 펴낸 『무예도보신지』는 검술과 총검술, 전통 무예를 함께 담은 책으로, 정조 대 편찬된 『무예도보통지』를 계승하기 위해 이름도 비슷하게 지었다. 곽동철은 무예에는 민족적 자강 의식이 담겨 있다고 보고, 일본 검도와 차별되는 우리식 검도를 소개했다.



▣ 본문 중에서
전통 시대 병서에는 가장 사실적인 과거와 현재, 미래가 오롯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병서는 당대의 삶을 가장 충실하게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본문 7쪽

조선 개국 후 세종까지 30여 년은 극도의 혼란기였다. 그 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군사력을 동원한 무력 장악이 필요했다. 따라서 세종은 군대의 역사를 통합하고 기준을 세우는 작업을 진행했다. 『역대병요』는 조선 건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전쟁사를 통합해 정리한 역대 전쟁사 모음 책이다.
-본문 43쪽

세조의 왕위 강탈 이후 조선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세조는 군사력을 강화하고 최측근을 요직에 앉혀 국정을 안정시키려 했다. 그 중심에 『오위진법』이 있다. 『오위진법』은 문종의 즉위와 동시에 시작된 병서 간행 사업의 핵심이다. 2군 6위의 고려 중앙군 편성 방식을 태조 대부터 변화시켜 문종 대에 의흥사·충좌사·충무사·용양사·호분사의 5사로 개편한 것을 전술 편제에 적용하기 위한 병서다.
-본문 53쪽

『무예제보번역속집』의 뒷부분에는 <신서왜검도>·<일본국도> 등을 수록해 일본을 이해하는 것을 도왔다. 또한 일본의 문화·왜선·왜구·왜도 등을 소개해 일본군의 전술을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책의 말미에 편찬자인 최기남은 “적국을 알지 못하면 안 된다”고 하며 일본의 재침입에 강한 반감을 표현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소가 아니라 나라를 잃게 된다. 그것이 역사다.
-본문 131쪽

정조는 『무예도보통지』에 군사 업무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까지 담아놓았다. 『무예도보통지』는 사도세자의 『무예신보』 편찬 의도와 맥을 같이하며, 이 병서로 기존의 당파와 무관한 새로운 무반을 육성하고 장용영을 중심으로 무예 체계를 표준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후에 이루어진 단병 무예서 편찬은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로 이어지며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문 221쪽

쓰러져가는 ‘조선이라는 배’의 마지막 키잡이 역할을 자처한 『융서촬요』의 저자는 이 병서로 조선이 다시금 부국강병을 이루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의 파고가 너무나 높았다.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이 ‘조선’이라는 먹잇감을 두고 침을 흘리고 있었기에 그 꿈은 사그라질 수밖에 없었다.
-본문 297쪽



▣ 추천사

조선의 문화에서 병법서는 늘 외면당해왔다. 이 시대에도 병법서 연구는 비주류로 머물러 있다. 문무(文武)가 하나라고 하면서도 늘 문(文) 중심의 서술과 연구로 역사 연구에 큰 틈이 있었다. 그 틈을 온몸으로 메우는 최형국 선생님의 연구 덕분에 잊혔던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조선뿐 아니라 근대의 병서와 무예사 자료도 중요하게 다룬 이 책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김풍기(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병서는 전쟁의 산물이다. 병서를 이해한 장수는 이겼고, 병서를 무시한 장수는 패했다. 이 책은 병서를 통해 조선의 흥망성쇠를 촘촘히 꿰어내고 있다. 무예사에서 독보적인 최형국 소장이 몸으로 써낸 산물이다. 저자는 몸짓과 글짓으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이상훈(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유장(儒將)’ 최형국 선생님의 역작인 이 책은 누구에게 유용할까?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기업인들, 특히 적은 자원으로 격전을 치러야 하는 스타트업 CEO들이다. CEO가 유능한 장수로 성장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담력정쾌’ 4단계, 기동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직 구성 방법 등 최고 결정권자에게 꼭 필요한 요체가 역사 이야기로 쉽게 서술되어 있다. 가히 ‘기업인이 읽으면 사업에 성공할 것이요, 정치가가 읽으면 선거에 승리할 책’이다.
-박현모(여주대학교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

저자는 글쓰기만 가능한 무예학자가 아닌 몸쓰기와 글쓰기를 같이하는, 몇 안 되는 문무겸비 무예인이다. 이러한 그가 새로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에는 조선시대 군사들이 사용한 무기와 전술, 군사의 훈련과 생활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저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무예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지혜가 가득 담겨 있는 책이다.
-조성균(무형문화재 전문위원)



▣ 차례

머리말

1장 새로운 나라를 위한 새로운 병서

조선의 ‘설계자’가 만든 병서_『진법』
병서로 왕권 강화의 기틀을 마련하다_『진도지법』
전쟁의 역사를 엮다_『역대병요』
조선군의 표준 전술이 완성되다_『오위진법』
조선의 군사 법전_『병정』
군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_『병장설』
호쾌한 조선의 정벌기_『국조정토록』

2장 임진왜란 이후 잿더미에서 일어서다

임진왜란으로 깨달은 전략_『무예제보』
화약 무기, 전장을 바꾸다_『신기비결』
진짜 적은 누구인가?_『무예제보번역속집』
전투마를 위한 병서_『마경초집언해』
옛 전법과 새 전법을 잇다_『연기신편』
정조, 새로운 군대를 꿈꾸다_『병학지남』
우리글로 완성된 병서_『진법언해』

3장 조선의 부활을 꿈꾸다

백성과 함께 한양을 지키다_『수성책자』
뒤주에 갇힌 병서_『무예신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통합 전술_『병학통』
동양 삼국 무예의 집대성_『무예도보통지』
역사 속 무인을 기억하라_『해동명장전』
국가가 백성을 지키지 못한다면_『민보의』
전쟁의 선봉에 선 화약 무기_『융원필비』

4장 몰락하는 조선을 지키다

중국 병서의 핵심을 모으다_『무비요람』
조선을 지킬 마지막 무기_『훈국신조기계도설』
서양의 이양선에 대응하다_『융서촬요』
훈련도감의 모든 것_『훈국총요』
근대식 군대의 탄생_『보병조전』
활쏘기로 조선의 명맥을 잇다_『조선의 궁술』
검도와 총검술을 담다_『무예도보신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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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소개 __ 최형국

칼을 잡고 수련한 지 20년이 조금 넘은 검객(劍客)이며 인문학자다. 중앙대학교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사·전쟁사·무예사를 연구해왔다. 현재 중앙대학교 강사와 한국전통무예연구소 소장으로 있으며, 수원시립공연단 무예24기 시범단에서 상임연출로 활동하고 있다. 『친절한 조선사』(미루나무, 2007), 『조선무사』(인물과사상사, 2009), 『조선후기 기병 전술과 마상무예』(혜안, 2013), 『조선군 기병 전술 변화와 동아시아』(민속원, 2015), 『정조의 무예 사상과 장용영』(경인문화사, 2015), 『조선의 무인은 어떻게 싸웠을까?』(인물과사상사, 2016), 『무예 인문학』(인물과사상사, 2017) 등의 저서와 「협도의 탄생」, 「조선 후기 권법의 군사무예 정착에 대한 문화사적 고찰」, 「18세기 활쏘기(國弓) 수련 방식과 그 실제」, 「조선 초기 군사 전술체계와 제주 전투마」 등 무예사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연출한 작품으로는 논버벌 타악극 <무사&굿>, 무예 뮤지컬 <관무재-조선의 무예를 지켜보다>와 무예24기 상설시범 <장용영, 진군의 북을 울리다> 등이 있다. 마음속에 ‘무인(武人)’이라는 두 글자를 짙게 써내려가며, 한 손에는 칼 그리고 나머지 한 손에는 펜을 들고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 실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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