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구입

도서구입
골목 인문학
- 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저자 임형남․,노은주 | 쪽수 372쪽 | 판형 152×210(신국판 변형) | 값 17,000원 | 분야 인문교양 > 역사 > 골목 | ISBN 978-89-5906-507-3 03900 | 출간일 2018년 10월 5일


키워드 : 골목, 인문학, 도시, 삶의 온도, 도시의 정체성, 도시의 기억, 입정동, 남창동, 북창동, 동자동, 통의동, 통인동, 수하동, 홍대, 신흥동, 월명동, 온금동, 청호동, 입암면, 영양읍, 초량동, 사오싱, 펑황 고성, 먀오왕성, 운니동, 익선동, 북아현동, 남산골, 성북동, 부암동, 로데오거리, 삼지내마을, 메지로, 아오야마, 니시진, 철학의 길, 이치조지, 혼무라, 황금소로, 옥인동, 돈암동, 능동, 삼각지, 수송동, 명동, 피맛길, 외암마을, 중동, 청라언덕, 양동마을, 용호동, 무근성길, 페네


▣ 출판사 서평


골목은 개인의 역사이자 도시의 기억이다
“그 골목에 삶을 두고 왔다”


도시는 사람의 몸과 똑같다. 큰길이 굵은 핏줄이라고 보면 큰길 뒤로 뻗어 있는 길들은 가는 핏줄이다. 큰길 뒤로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그 길이 골목이다. 도시에는 무수한 골목이 있다. 사람의 몸처럼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골목이 잘 살아 있고 건강해야 도시도 생기 있게 살아난다. 골목은 도시의 맨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며 삶의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골목에는 달팽이 속도처럼 느리기 그지없는 시간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고, 무수한 집과 흉터 같은 삶의 웅숭깊은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골목은 장소와 장소 사이의 틈이며, 하나의 장소다. 장소의 속성은 머무름을 전제하지만, 골목은 흘러가는 길이면서, 또한 머무는 장소다. 큰길에서 꺾어 들어가면 만나는 그 골목은 집으로 이어지는 그냥 경로가 아닌, 소통이 이루어지고 교류가 이루어지는 장소다. 그래서 그곳엔 시간이 담기고 사람 이야기가 담긴다. 골목은 모든 사람의 삶에서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배경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골목에서 나고 그곳에서 자라며 그곳에서 생활했다. 그래서 골목은 우리의 기억이며 추억이기도 하지만 어두운 과거이기도 하다. 그 골목에는 굽이진 인생길처럼 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어떤 신산함이 아로새겨져 있다.
도시화가 강력하게 진행되며 효율성과 개발 이익을 위해 골목은 허물어지게 되었고, 이제는 다소 희소하고 과거 회귀적인 정서의 배경으로 남게 되었다. 사람들이 골목을 찾아가서 즐기기는 하지만, 그곳에는 생활은 없다. 생활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다. 결국 우리는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오랜 풍상을 겪으며 생긴 얼굴의 주름살과도 같은 골목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작고 사소한 개인의 역사와 도시의 기억도 함께 묻혔고 증발되어버렸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덮고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라는 포장이 덮이며 다양한 연상과 감흥을 불러온다. 사람이나 도시는 시간이 담기고 기억이 담겨 품위와 개성이 살아 있어야 한다.
건물은 없어져도 복원이 가능하지만, 골목길은 없어지면 복원이 어렵다. 그 골목길이 없어지면 도시의 정체성은 점점 없어진다. 우리는 기회가 되면 미련 없이 동네들을 깔아뭉개고 기억을 지워버리고 치부를 감추어버린다. 또 실개천들을 오염시켰고, 냄새난다고 피했으며, 길을 넓힌다고 아예 시멘트로 덮어버린다. 우리의 정체성과 자존심도 그때 같이 묻혀버렸다. 그렇게 도시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속도가 인간을 지배하고 편리가 인간을 소외시키는 것이다. 아직도 골목을 없애고 넓은 길로 만드는 것이 도시의 발전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은 어느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으로 들어가 걸어보고 과연 재개발이 합당한지 살펴볼 일이다.
『골목 인문학』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가 태어나서 자라 가장 익숙한 서울의 골목, 여행으로 혹은 일로 다녀온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아름다운 골목,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몇몇 나라의 숨겨진 골목 등을 통해 골목의 풍경과 역사를 그려낸다. 그 풍경과 역사에는 사람 이야기가 있고, 동네 이야기가 있고, 도시 이야기가 있다.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사람 이야기이며 사람의 자취라고 보면, 골목이야말로 사람의 자취와 사람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는 나이테와 같은 장소다.


골목에는 삶이 켜켜이 쌓여 있다


종로나 을지로의 골목을 걷다 보면 시인이며 소설가이고 건축가이기도 했던 이상이 떠오른다. 그는 백부 김연필의 양자로 들어가 통인동 154번지에서 자랐다. 이상은 신명학교와 보성학교와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나중에 금홍이라는 여인과 종로 1가로 추정되는 곳에서 제비다방을 경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태어난 사직동은 길이 되어버렸고, 통인동 집은 여러 필지로 나뉘었고, 신명학교는 배화여자고등학교와 합쳐졌다. 보성학교 터는 조계사가 되어버렸고, 제비다방과 수하동 아파트 등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심지어 그가 근무했던 조선총독부 건물도 철거되었다. 이상의 복잡한 내면을 보는 듯한 골목들은 YMCA 부근에 잔설처럼 아주 조금 남아, 숨어 지내는 패잔병처럼 몸을 숨기고 있다.
목포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던 바닷가 작은 어촌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이자 일본으로 여러 가지 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한 항구로 목포를 개발했다. 그런데 그전부터 목포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 있었다. 목포항에 붙어 있는 언덕에 집들이 바닷가 바위에 자리 잡은 여러 가지 패각류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이 동네는 온금동이라고 불리지만 원래 이름은 ‘다순구미’다. 다순구미는 ‘양지바른 곳’이라는 뜻이다. 아기자기하며 아름답고, 굽이진 인생길처럼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언덕을 따라 굽이굽이 길들이 이어져 있다. 좁기도 하고 다소 넓기도 하고 가파르기도 하다가 완만하기도 한 아주 다양한 표정을 지닌 길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속초 청호동 도로변에는 낮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오래된 마을이라지만 별다른 정취라든가 연륜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작은 마을 읍내의 풍경처럼 조악한 간판과 가게가 즐비하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중간중간 보이는 좁은 골목들이 나타나고 그 사이로 작은 집들이 빼곡하게 달려 있다. 한눈에도 그곳에서는 삶의 어떤 신산함이 느껴진다. 함경도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겪었을 힘든 삶의 여정이 이곳 아바이마을에 담겨 있다. 수시로 들이닥치는 해일로 집을 땅에 반쯤 묻은 채 살아야 했고, 두고 온 집과 가족을 시시때때로 그리워해야 했다. 불시에 떠나온 고향이 바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에 그런 그리움은 더했을 것이다. 아바이마을에는 그런 쓸쓸한 기억과 오래된 이야기가 세찬 바닷바람 사이로 끊임없이 떠돌고 있다.
부산역 바로 건너편에 있는 원도심에 해당되는 초량동은 6·25전쟁 이전부터 원주민이 많이 살았던 오래된 곳이다. 부산역 광장의 떠들썩하고 복잡한 풍경과는 조금 다른, 부산의 생살을 만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중에서 산복도로는 내륙에서 달려나온 산맥의 힘줄들이 뻗어가다 해안에 이르러 급하게 멈춘 듯, 가파르게 바다를 향해 떨어져내리는 부산의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도로다. 이곳에 서면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부산이나 목포 같은 개항기 항구도시는 부두나 시장에서 일하기 위해 찾아든 노동자들이 기존의 주거지보다 점점 위쪽으로 숨 가쁘게 올라가 산동네에 정착했다. 경사지에 틈새도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집들은 6·25전쟁 이후 폭발적으로 유입되는 인구를 도시 인프라가 미처 감당하지 못한 결과다. 그곳에는 시간이 잠시 느려지고 흘러내릴 듯 겹겹이 쌓인 흉터 같은 삶의 흔적들이 흐르고 있다.


골목에는 세상의 모든 풍경이 있다


서울 종로세무서 뒤편에 있는 익선동은 다른 골목처럼 오랜 시간 지속된 곳인데, 익선동 166번지는 한옥이 가지런히 모여 있는 블록이다. 1930년대에 급속한 인구 유입으로 가중되던 경성의 주택난을 타개하기 위해 북촌에 한옥을 개발할 때 같이 지어낸 곳이다. 지금 북촌의 한옥은 10여 년 전부터 고쳐지고 정리되어 아주 비싼 몸으로 다시 태어났는데, 익선동은 그 사이 블록으로 묶어 개발하려던 계획이 중단되어 땅값만 천정부지로 솟아오른 채 잊혀서 여전히 퇴락해 서걱거리는 서민의 동네로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익선동에 젊은이들이 몰리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몰리면서 이곳 역시 사람은 자꾸 밀리고 커피나 피자, 여유와 낭만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추상으로 채워지고 있다. 그렇게 골목의 색깔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성북동에는 두 얼굴이 있다. 서울 성곽에 붙은 언덕에 펼쳐진 오래된 골목을 가진 북정마을 등의 소박한 마을과 건너편 언덕 위에 1960년대 삼청터널이 개통되며 진행된 택지 개발로 이루어진 큰길에 면한 저택들이 공존한다. 만해 한용운, 조지훈, 김기창, 김환기 등의 문인과 화가 등이 살며 활동했던 흔적이 아직도 살아 있는 곳은 북정마을 근처다. 삼선교에서 올라가다 보면 선잠단 조금 못 미쳐 예전에 미술사학자이며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이 살던 ‘최순우 옛집’이 나온다. 성북동에는 성벽 밑으로 개나리들이 피어 있고, 햇볕을 잔뜩 머금어 따끈하고 노릇노릇해진 성벽 돌들이 와글와글 떠들고 있다. 성북동에는 산길과 골목길, 성벽길 등 참 다양한 질감과 표정의 풍경이 살아 있다.
담양 창평 삼지내마을은 우리나라 최초의 ‘슬로 시티’로 지정된 마을이자 오래된 고택과 돌담이며 동네를 관통하는 실개천이 잘 보존된 곳이다. 삼지내마을은 사람의 얼굴이나 인격이 다양한 것처럼 집도 그 느낌이나 품격이 다양하고, 마을 역시 아주 다양한 얼굴과 성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다. 3.6킬로미터나 이어지는 둥근 화강석을 진흙으로 쌓은 토담길은 너무 길지도 않고, 열리고 닫히고 좁았다가 넓어지는 다양한 풍경을 담고 있어 지루하지 않고 포근하다. 삼지내마을의 살풋한 돌담길을 거닐다 문득 창평의 너른 들과 품을 열어 푸근하게 안아주고 있는 무등산을 보고 있노라면, 단지 세상사 바쁠 게 뭐 있겠나 하는 여유로워지는 마음에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일어난다.
‘철학의 길’은 일본 교토 동쪽에 있는 작은 오솔길이다. 불교 사찰인 긴카쿠사의 옆구리에서 시작해 난젠사까지 이어진, 약 2킬로미터 되는 길이다. 봄에는 벚꽃이 장관이고 가을에는 그윽하게 단풍으로 물들어 사시장철 사람들이 몰리는 이 길은 정말 아름답고 매력을 지닌 곳이다. 산책과 철학이라는 단어의 쌍은 아주 잘 어울리며 단어 간의 순응이 부드럽게 잘된다. 교토는 몇 집 걸러 사찰이 나오고 모퉁이를 돌면 정원이 나오는 역사 도시라는 의미도 있지만, 몇백 년 쉼 없이 이어진 교토 사람들의 생활과 자부심이 동네를 가로지르며 늠실거리는 실개천과 같은 속도로 흘러다닌다. 세상이 너무 변하고 나 또한 그에 못지않게 변하지만 어딘가, 누군가는 변하지 않고 세상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교토가 그런 곳일 것이다.


골목은 역사를 기억한다


능동에는 어린이대공원이 있다. 1973년 어린이대공원이 개장했을 때 어린이들에겐 뛰놀고 싶은 꿈의 동산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종갓집 같은 상징적인 위상만 있고, 오래되어 용도가 다한 장난감처럼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어느 구석에 놓여 있는 한적한 곳이다. 능동이라는 동네 이름은 예전에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의 비, 순명효황후 민씨의 무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골프장을 만들어 조선총독부의 고관이나 조선인 귀족들이 즐겼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나던 1941년에는 골프 금지령이 내려져 빈터가 되었다. 해방 후에는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병사나 장교들이 즐길 골프장을 다시 만든다. 그렇게 20년 정도 운영되다가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어린이대공원으로 변신하게 되었다. 참으로 기구한 땅의 팔자다.
용산 삼각지 로터리는 서울역에서 용산역 쪽으로 가다 보면 나오는 꽤 넓은 네거리다. 이곳에는 1967년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 입체 교차로인 삼각지 고가차도가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만들 당시와는 교통 상황이 많이 달라져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고, 콘크리트 구조물이 낡아 1994년 철거되었다. 우리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르며 이 고가차도를 기억할 뿐이다. 삼각지에서 이태원까지 경계 구역은 고려시대에는 몽골군이,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임오군란 이후에는 청나라군이,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의 주력 부대였던 20사단이, 해방 후에는 미8군이 시설을 이어받아 오랫동안 머물렀다. 지금은 미군도 이곳에서 떠났다. 최근에는 용산역 주변부터 오밀조밀한 골목들이 한 뭉텅이씩 썰려나가면서 덩치 큰 상업 건물이나 주상복합이 들어서고 있다.
종로 피맛길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탄 말을 피해 다니는 길’이었다. 종로의 한 켜 뒤로 대로와 평행하게 좁은 길이 동대문 인근까지 뱀처럼 구물구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은 서민들을 위한 소박한 먹거리인 해장국, 생선구이, 빈대떡 등이 익으며 피워내는 연기와 냄새로 그득했다. 원래의 피맛길은 종로 1가 청진동에서 종로 6가까지 이어져 있었지만, 지금은 거칠게 지워낸 지우개자국처럼 여기저기 지워진 채 아주 희미한 자국만 남아 있다. 대규모 재개발로 사라진 것이다. 그 개발로 얼마나 큰 이익이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의미 있는 골목이 사라지는 사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수도라는 서울의 역사성과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대구 동산동 청라언덕은 복잡한 대도시의 번잡함에서 살짝 비켜나 푸른 담쟁이넝쿨이 휘감긴 집들로 둘러싸인 언덕이다. 대구가 고향인 작곡가 박태준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여학생과의 추억에 시인 이은상이 쓴 가사를 입힌 <동무 생각>이라는 가곡에 나오는 언덕이다. 이곳에는 100여 년 전에 지어졌던 선교사 챔니스, 블레어, 스윗즈의 집이 남아 있다. 이 선교사들은 북장로회 계열이었는데, 19세기 말부터 대구성의 남문 안에 있던 민가를 개조해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선교사들은 성 바깥에 있는 동산 지역을 구입해 병원을 계획했는데, 동산병원은 벽돌 벽에 기와지붕을 올렸다는 기록이 사진으로 전해진다.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 중에는 스윗즈 주택에만 한식 기와가 얹혀 있다. 미국 식민지풍 주택과 한식 기와라는 구성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 차례


책머리에 - 6


제1부 골목에 삶을 두고 왔다
내 유년의 골목에는 아름다움이 번져 있다 - 15
여러 집이 얼굴 비비며 빼곡히 차 있다 - 23
화석 같이 남아 있는 그 시절의 골목 - 32
세월에 따라 달라지는 온도와 색깔 - 40
거닐고 싶어도 거닐 수 없는 그만의 공간 - 49
피 끓는 청춘들로 가득한 골목 - 57
수탈의 흔적을 감춘 채 과거와 현재가 마주하다 - 65
어부 가족들은 바다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 74
실향민의 고단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83
오랜 양조장의 깊어가는 술맛처럼 - 91
흉터 같은 삶의 흔적들 - 99
시간의 골을 따라 흐르는 물길은 도시의 삶이다 - 107
소수민족의 애환이 담긴 골목 - 116
구속 없이 자유롭게 살기를 바라다 - 125


제2부 풍경을 굽이굽이 담다
낙원으로 가는 나만의 통로 - 135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삶의 터전 - 143
남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피어난 골목 - 151
소박한 골목 어딘가에 핀 매화 - 159
시간이 멈춘 채 달팽이처럼 느리게 걸어가는 골목 - 167
꽃이 피어났다 시든 자리에 삶이 드러나다 - 175
구불거리는 물길 따라 흐르는 느림의 미학 - 183
고요함 속에서 500년 된 옛이야기를 듣다 - 192
수채화 물감이 스며들듯 사람들이 보인다 - 199
느린 걸음으로 걷고 싶은 골목 - 207
사시장철 피어 있는 단정한 골목 - 215
기찻길과 서점 사이로 달콤하게 녹아든 풍경 - 224
고요와 경건과 예술이 고여 있다 - 233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카프카의 도시 - 241


제3부 기억을 오롯이 품다
대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는 기억의 조각들 - 253
잃어버린 시간 속을 걷다 - 262
묵묵히 이어가는 마을의 전통 - 270
현대와 근대가 혼재된 골목 - 279
역사의 기억이 씨줄과 날줄처럼 엇갈리다 - 288
세상의 모든 색과 언어가 쌓인 문화와 예술의 거리 - 296
골목마다 숨겨진 서민들의 소박한 꿈과 땀 - 304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가장 완벽한 골목 - 312
잠자리가 놀다 간 골목 - 321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언덕 - 329
두 집안의 오래된 살림집이 품은 이야기를 듣다 - 337
메타세쿼이아 그늘 아래 스며든 시간의 풍경 - 345
돌담이 숨어 있는 바람의 골목 - 353
화려한 문명과 한때의 영광을 만나다 - 361



▣ 본문 중에서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을지로통은 무척 한가했다. 대로변으로 고만고만한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전차가 딸랑거리면서 다녔다. 자동차는 드물었고, 말을 탄 경찰이 지나다니기도 했다. 우마차는 흔히 볼 수 있었는데, 우마차를 끄는 소가 길에 배설물을 한 무더기 쏟아놓고 가기도 했다. 그때 나는 길가에 빽빽하게 붙어 있는 수많은 간판을 보면서 한글을 익히게 되었고, 한자도 제법 많이 알게 되었다. 특별히 학원에 다닌다거나 선행학습이 없던 시절에, 그 골목은 나의 학원이었고 나의 유아원이었다. 「내 유년의 골목에는 아름다움이 번져 있다: 서울 입정동 골목」(본문 17~19쪽)


그때 넓지도 않은 대학 정문 앞에는 ‘호미화방’이, 그 2층에는 ‘유정다방’이, 길 건너에는 단층 건물에 ‘계단집’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당시 학생들의 동선이라는 게 뻔해서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친구들은 대충 그 주변에서 찾을 수 있었다. 라면값을 1,000원 받는 날이 오면 가게에 에어컨을 놓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하던 계단집 사장님은 건물이 신축되면서 동네를 떠났고, 호미화방도 그 자리에 대학교 건물이 확장되면서 이사를 갔다. 개발의 파도가 덮쳐올 때마다 작은 가게들은 휩쓸려가거나 한 블록 안쪽으로 뒷걸음쳐 들어가는데, 놀이터 앞 골목 닭곰탕 집만은 아직도 꿋꿋하게 남아서 예전에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하러 가끔 들르기도 한다. 「피 끓는 청춘들로 가득한 골목: 서울 서교동 홍대 골목」(본문 60쪽)


북아현동 골목이 아주 오랜 역사를 품고 있거나 그곳에 대단히 중요한 유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연 발생적으로 집을 짓고 길을 만들고 했던 우리의 근대와 현대의 시간이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서울 사대문 안 동네들은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체계를 조금씩 개선하며 유지되었지만, 성 밖 동네들은 근대화 시기에 서울로 인구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급속한 팽창이 이루어질 때 생겨난 동네가 많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보면 그 당시 서울의 성 밖 동네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엄마의 말뚝』이라는 작품을 통해 현저동 언덕 동네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과 골목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삶의 터전: 서울 북아현동 골목」(본문 145쪽)


압구정동 로데오거리는 그런 배경에서 태어났고,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관통하는 소비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이 되었다. 한창때 그곳에는 오렌지족이 영역을 수호하는 원주민처럼 있었다고 하고 엄청난 활기가 그득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로데오거리가 지력이 다할 무렵 그곳에 들어갔다. 끝물이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들어가고 한 3년 동안은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밤새 놀았던 흔적이 널브러진 한적한 도로를 가로질러 출근해서 일을 마치고 퇴근할 무렵이면, 얼굴 가득 미소를 피워 올리며 무언가 즐거움을 기대하며 모여드는 천사 같은 선남선녀들이 양떼처럼 몰려들었다. 그 후 IMF가 닥치며 사람들 발길이 뚝 끊어지고 나서는 분당선 지하철역이 새로 개통되었지만 예전처럼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꽃이 피어났다 시든 자리에 삶이 드러나다: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골목」(본문 177~178쪽)


소설가 김영하는 도쿄 번화가를 ‘볼륨을 줄인 대형 텔레비전’ 같다고 했다. 사람이 많고 도시는 크고 넓고 또한 복잡하다. 그러나 그 안은 고요하다. 일본에 가면 문득 그 고요함이 익숙하지 않으며 때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하라주쿠 큰길가 인도를 걸어보면 알게 된다. 대표적인 번화가인 그곳은 일요일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그득하지만, 꽤 긴 거리를 걷는 동안 내 가방을 치는 사람도 없고 내 어깨에 부딪히는 다른 어깨도 없다. 극성이 같은 자석처럼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 번화가가 소리를 줄인 대형 텔레비전 같다면, 일본의 골목은 그 반대다. 나는 영상은 사라지고 소리만 두런두런 남은 메지로 골목에서 500년도 훨씬 더 된 옛이야기를 오랫동안 듣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500년 된 옛이야기를 듣다: 일본 도쿄 메지로 골목」(본문 198쪽)


미아리고개에 올랐다. 그런데 정상에 도열하고 있던 호떡을 팔던 가게들도 다 없어졌다. 그 호떡 가게들은 딱 쟁반만 한 크기의 호떡을 팔았는데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밀가루를 얇게 펴서 그 안에 꿀을 넣어 먹기도 좋았다. 한참 먹성이 좋았던 우리는 그곳에 자주 갔고 가끔 많이 먹기 시합도 했다. 플라타너스가 풍성하게 그늘을 드리우는 곧게 펼쳐진 성신여자대학교 앞으로 난 길을 걸었고, 한옥이 그득했던 골목길을 빗속에서 더듬으며 걸었다. 물론 많은 것이 없어지고 풍경이 많이 변했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돈암동이라는 공간 위로 예전의 풍경을 복원해 환등기처럼 펼쳐 보여주었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해내며 예전에 친구들과 벨을 누르고 도망쳤던 한옥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 속을 걷다: 서울 돈암동 골목」(본문 268~269쪽)


명동에는 옛날을 보러 가는 사람이 있고 단지 현재만을 즐기러 오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이 섞여서 강물처럼 흐른다. 다방을 나오며 문득 고개를 들어 명동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수한 간판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 심지어 아라비아어까지 세상의 모든 언어가 들어 있었다. 그 안에는 세상의 모든 색이 다 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 간판을 보며 너무 복잡해서 정신없다 눈을 흘긴다. 그러나 그날 내 눈에 비친 명동의 간판들은 무척 흥미로웠다. 그 복잡함과 그 현란함과 그 유치함이 가득한 다양성은 바로 명동의 얼굴이며 명동의 성격이라고 생각하며, 안경을 고쳐 쓰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세상의 모든 색과 언어가 쌓인 문화와 예술의 거리: 서울 명동 골목」(본문 302~303쪽)


동네를 구경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골목과 담장과 대문들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공간을 보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동네가 만들어낸,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양동마을은 1458년 손소가 양동마을에 들어가 서백당이라는 집을 지으며 시작된 500년이 넘는 이야기를 품은 마을이다. 집들과 길들이 언덕 위에서 골짜기 안에서 포도송이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는 곳이다. 관광버스로 들어가서 기웃거리다 서둘러 나오는 곳이 아니고, 들어가서 조용히 앉아 500여 년 동안 쌓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곳이다. 울긋불긋한 기념품을 팔고 민속주점에서 흥청거리는 관광객이 넘쳐나는 부박한 관광지로 변질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두 집안의 오래된 살림집이 품은 이야기를 듣다: 경주 양동마을 골목」(본문 343~344쪽)



▣ 지은이 소개 _ 임형남 ․ 노은주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홍익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고,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등이 있다.

 

공통정보입니다.

 

상품 리뷰
No 제목 작성자 날짜 평점
상품 문의
No 제목 작성자 날짜 상태